10. 적응하는 비엔나의 일상 그리고 드로잉 수업

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비엔나에서의 생활은 시간이 흐르며 차츰 리듬이 만들어졌다. 일주일에 세 번 저녁에 미술 수업이 있고, 오전에는 이곳저곳 구경 다니거나 비엔나 둘레길(Stadtwanderweg)을 걸으며 코스별 완주 도장을 찍었다.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떨어졌고 거리는 고요한 적막에 쌓였다. 그리고 하루가 저물었다.


기술자가 다시 다녀가며 속 썩이던 보일러를 수리했지만 커다란 알람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하니 불안은 사라졌지만 소리에 적응하기는 여전히 힘들었다.

청소부가 와서 대청소를 하고 침대 시트를 갈아주어 쾌적해졌다. 남편이 주인한테 문자 했을 때는 사용자가 구매해서 쓰라고 하더니 새 휴지도 놓여있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런 조치를 받기 위해 소피아는 주인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고 남편도 문자와 메일을 부지런히 보냈다. 이 세상 어디나 알아서 해주는 곳은 없다.


기술자가 보일러를 고치고 청소부가 청소하는 동안 우리는 외출했다. 분리파 전시관(체제시온)에 갔는데 새로운 전시 준비 중인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하 방에서 클림트 그림만 볼 수 있었다. 클림트의 벽화는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아 부분 부분만 볼 수 있었다. 한 옆에 헤드폰이 있고 베토벤 음악이 나왔다. 음악을 들으며 클림트의 벽화 그림을 한참 감상했다. 볼수록 천재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림트 그림을 봤으니 목적은 달성했지만 다른 전시가 하나도 없으니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클림트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거울과 자석을 샀다.


저녁에는 집 근처 사설 학원(Zeichenfabrik) 미술 수업을 갔다. 누드 드로잉 수업 세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강사는 모델을 보고 그리면서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모델을 그리는 동안 바로바로 피드백을 주니 많은 도움이 되었고 재미있었다.



비엔나 외곽에 있는 에른스트 박물관(Ernst Fuchs-Museum) 도 보러 갔다. 1900년대 비엔나를 새롭게 건설하는 데 공헌한 오토 바그너가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내 상상과 너무 달랐다. 거부감마저 들었다.

검색하니 유명한 화가인 에른스트가 오토 바그너의 건물을 사서 자신의 취향대로 손 보고 박물관으로 만들고 안에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다고 한다. 에른스트는 내 취향의 화가는 아닌 듯했다. 박물관 내부는 들어가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오트 바그너가 지은 또 다른 건물(Villa Wagner II)을 보러 갔다. 하얀색 깔끔한 그 건물은 멋졌다. 그러나 개인 집이라 들어갈 볼 수는 없었다.


에른스트 박물관까지 온 김에 비엔나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전망대(Jubiläumswarte)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면서 걸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산으로 이어진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했다. 헉헉대며 계단을 올랐다. 높은 지대에는 멋진 주택들이 깔끔하게 지어져 있었다. 도로가 지그재그로 산을 돌아가며 나있어 산 중턱이나 꼭대기의 집도 바로 앞에 차를 세울 수 있고 집집마다 차고도 있었다. 우리나라 산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부터 도로와 주택이 함께 개발된 것 같았다.


한 시간 가까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산길과 도로를 걸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에는 24시간 개방이라고 쓰여 있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맥이 빠졌다. 안내판에는 동절기라 폐쇄한다고 쓰여있었다.

남편은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문을 넘어 올라가 보자고 했다. 문이 낮아서 넘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쫄보인 나는 포기하자고 했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말도 안 통하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거나 벌금 고지서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다시 걸었다. 근처에 겨울이라 운영은 안 하지만 역시 오토바그너가 건축한 성당(Wien Museum Otto-Wagner-Kirche am Steinhof)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높은 산에 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았다. 구글 지도에 의존하던 우리는 당황했다.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 안내판의 지도와 곳곳의 이정표를 살피며 방향을 가늠했다.


오토 바그너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성당은 조금 전에 보았던 에른스트 박물관보다 훨씬 멋있었다. 나이 많은 할머니와 수녀님을 만났다. 우리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들의 친절한 마음은 고마웠지만 사진 속 우리는 죄다 이상하게 나왔다. 서양 사람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은 대체로 사진을 못 찍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다. 그래도 건축가 오토 바그너 투어는 이 성당을 보고 친절한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며 마을이 가까워지니 인터넷이 터졌다. 더 내려오니 커다란 공원묘지가 보였다. 묘지 근처에는 비석 가게, 꽃집들이 즐비했다. 사람 사는 곳과 묘지가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어울려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까운 아시아 식당(Tao Garten)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남편은 라멘, 나는 덮밥을 주문했다. 음식 이름은 일본식인데 맛은 중국 스타일이었다. 어쨌든 바로 만든 따뜻한 라멘과 덮밥은 아주 맛있고 훌륭했다.


저녁에는 또 다른 미술 수업이 있어 VHS Mauer 학교로 갔다. 비엔나 외곽이지만 트램 한 번만 타면 갈 수 있었다. 수강생은 일곱 명이고 강사는 미국인이다. 비엔나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그 후 계속 비엔나에 산다는 강사는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드로잉 배우러 온 나이 많은 한국인인 나에 관해 궁금한 게 많은 듯 이것저것 물었다.

그림을 그릴 때 손목을 사용하는 게 아니고 팔꿈치 관절을 이용하고 팔 전체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숙달은 내 몫이겠지만 그림을 그릴 때의 기본자세를 알게 되었다. 또 그림을 그릴 때 부분에 매몰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보기 위한 실습도 했다. 여러 모로 유익했다.

그러나 수업 마지막에는 서로의 그림을 보며 느낌이나 감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어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강사는 나를 위해 독어와 함께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미국인 강사의 영어는 빠르고 발음이 굴러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영어를 사용하는 수강생들도 유창하게 말했고 독어는 당연히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수업이 끝나니 파김치가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나를 표현한 말 같아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래도 뿌듯함이 밀려왔다.

남편은 내가 수업받는 동안 마트에서 장을 보고 끝날 때까지 교실 밖에서 기다렸다. 무식해서 용감한 부인을 위한 응원인듯했다. 학교 밖 거리는 이미 깜깜했다. 집으로 돌아와 포도주를 함께 마셨다. 비엔나에서의 멋진 추억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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