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습관과 관성의 힘은 대단해서 비엔나로 환경이 바뀌어도 우리 부부가 사는 방식은 서울에서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외식보다는 집밥을 주로 해 먹었는데 남편이 식사 당번과 설거지까지 자처하고 나서서 나는 편했다.
주말에 아들을 초대해서 점심을 해주려고 한인 마트에 갔다. 앞쪽에는 고추장, 된장 및 각종 소스류를 비롯해 냉장고에는 김치, 잡채, 떡볶이, 밑반찬 등이 있고 냉동고에는 만두, 순대, 곱창 등 다양한 한식재료가 진열되어 있다. 안쪽에는 냉장고가 필요 없는 한식재료 및 다른 아시아 국가 음식 재료들이 있었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붐이라더니 장을 보는 서양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볶음밥, 순대 볶음, 불고기, 감자구이, 김치전을 하기로 했다. 좁고 낯선 부엌에서 남편과 동선이 자꾸 부딪쳤다. 손에 익지 않은 조리 도구와 식재료라서 음식이 제대로 만들어질까 걱정했지만 먹을만하게 만들어졌다. 아들과 소피아는 와인까지 곁들여 맛있게 먹었고 과일과 후식까지 잘 먹었다.
남은 음식과 식재료는 우리가 며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성인이 된 아들은 어릴 때만큼 많이 먹지 않았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어느 날은 미술 수업이 취소되어 마음 편하게 외출했다. 남편은 건축가 오토 바그너에 관한 글을 어디서 읽었는지 지난번에 갔다 온 오토 바그너 건물들에 새삼스레 관심을 보였다. 그때는 다 봤으면 빨리 가자고 재촉하더니 다시 가서 건물 사진을 제대로 찍자고 했다.
사진을 찍은 후 빈 시립 미술관으로 갔다. 상설전은 무료이고 비엔나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비엔나 시민이라면 꼭 보라고 무료 전시관을 운영하는 듯했다. 독일어를 몰라 아쉽긴 했지만 많은 예술 작품들도 있어 한참 구경했다. 특히 클림트와 에곤 쉴레 그림도 있어 관심 있게 보았다.
근처 카를 성당 앞 크리스마스마켓을 구경했다. 시청 앞이나 쉔부른 궁전 크리스마스마켓과 다른 독특함이 있고 파는 물건도 달랐다. 대량 생산된 물건보다는 공방에서 만든 듯 보이는 예술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가격은 당연히 비쌌다. 관광객보다는 아이들을 동반한 근처 지역 주민들이 주를 이뤄서인지 혼잡하지 않았다.
이곳의 회전목마는 작지만 아주 인상적이었다. 회전목마 안쪽에는 말이나 마차대신 자동차 모형, 선풍기, 욕조, 타는 장난감등이 고정되어 있고 아이들은 그 위에 올라탔다. 특히 머리를 넣을 수 있는 새장에 머리가 갇힌 아이도 보였다.
더 재밌던 광경은 그 회전목마를 돌리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회전목마 주변에 연결된 자전거였다. 안에 타고 있는 아이들 부모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회전목마를 돌렸다. 자전거 속도가 빨라지면 회전목마 속도도 빨라졌다. 입을 활짝 벌려 웃는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신나는 음악은 크리스마스마켓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비엔나에도 서울 둘레길처럼 12개의 하이킹 코스가 있고, 각 코스를 완주할 때마다 도장을 찍고 도장 개수에 따라 기념 배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도장 용지는 시청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다운로드할 수 있지만 우리는 프린터기가 없어 시청을 직접 방문했다. 종이 한 장을 예상했는데 작은 책자를 받았다. 지도뿐 아니라 코스에 대한 설명, 출발 지점으로 가는 대중교통 등이 안내되어 있었다. 하지만 독일어라서 번역기를 이용해야 했다. 12코스 완주를 목표로 정했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몸에 힘이 들어가며 활력이 생겼다.
얼마 후 비엔나 하이킹 1코스 11km를 걸었다. 산에 들어서 걷기 시작한 후 부슬비가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이 되는데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들이 보여 우리도 걷기로 했다. 한참 가다 보니 비가 그쳤다. 비엔나의 겨울비는 쏟아지지 않고 오락가락하거나 금방 개었다.
안내서에 나와있는 대로 도장 찍는 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비엔나 하이킹이 처음이라 감이 없어서인지 도장을 근처에 두고 한참 찾았다. 도장이 뭐라고, 찍고 나니 뿌듯하고 동기 부여도 되었다.
산을 내려올 때는 파란 하늘이 나왔다. 수확이 끝난 넓은 포도밭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냈다. 비가 내린다고 포기하지 않고 걷길 잘했다. 걷고 난 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낯선 도시 생활에 적응하느라 이리저리 지친 마음에 안정감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