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비엔나 하이킹 코스, 도장받기에 진심이었다

빈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특별한 일정이 없던 날이라 비엔나 하이킹 코스 2를 걷기로 했다. 이 날은 유달리 안개가 자욱했다. 1코스 걸을 때 일기 예보에 비 소식이 없었지만 막상 산에 오르니 비가 내렸던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대비를 했다.

얼마 전 판도르프 아웃렛에서 산 패딩을 입고 위에는 고어텍스를 입었다. 춥거나 비가 와도 문제없을 복장이었다. 내 말을 안 듣는 남편이지만 웬일인지 내가 입으라는 대로 패딩을 입었다.


역시 산에 오르니 부슬비가 내렸다. 나는 고어텍스 옷을 입어 상관없지만 남편은 배낭에 있는 고어텍스를 입으면 더울 것 같다며 끝까지 비를 맞으며 걸었다.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그냥 맞아도 될 정도이기는 했다. 문제는 비가 아니라 짙은 안개였다. 주변 풍경은 고사하고 몇 미터 앞도 잘 안보였다.


그래도 1코스 걸었던 경험을 살려 요령껏 안내 표시를 찾으며 걸었다. 반환점에 있는 휴게소는 겨울이라 휴업이었다. 근처 도장 보관소에서 코스 2 도장을 찍었다. 이게 뭐라고, 도장을 찍으니 뿌듯하고 성취감이 느껴졌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웨스트 반 근처 쇼핑센터를 돌아보고 마리아테레지아 광장 크리스마스마켓을 구경했다. 월요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고 적당해 구경하기에 궤적 했다. 다양한 공예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 등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두워지자 이곳저곳에 불이 들어왔다. 도시 전체가 새로 탄생하는 것 같았다. 낮과 다른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멀리 어둠 속에서 밝게 빛을 밝히고 있는 시청이 보였다. 사진을 찍고 거리를 더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무척 어두워 밤처럼 느껴졌지만 여섯 시도 안 된 시각이었다.



며칠간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주말이 되어 비엔나 하이킹 3코스를 가기로 계획했다. 다행히 기온도 높고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나왔다. 비엔나에서 본 몇 번 안 되는 파란 하늘이었다.


3코스는 안내판이 잘 되어 있고 포장된 도로도 여러 군데였다. 그런데 도장을 찍으려니 잉크가 말라 있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 잉크에 물을 부어 도장을 찍었다. 흐릿하지만 3코스는 알아볼 수 있었다. 도장이 세 개 모였다. 세 개나 모았다고 좋아하며 한참 웃었다. 도장 모으는데 진심인 우리가 웃겨서 서로 마주 보고 또 한참 웃었다.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장을 보았다. 일요일 장까지 봐야 해서 이것저것 많이 샀는데 20유로 정도 들었다. 마트 물가는 비싸지 않다. 환율이 정상적이었다면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저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파스타를 만들었다. 남편의 요리 실력이 나날이 좋아지고 식재료도 신선하고 질이 좋아 완성된 파스타는 아주 맛있었다.


비엔나 하이킹은 비엔나 생활에 활력을 주었다. 겨울이라 나뭇잎들도 많이 떨어졌고,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산 길은 진흙이라 푹푹 빠지는 곳도 많고, 식당이나 휴게소는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고,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계절이 좋았다면 더 멋진 경험이었을 거다. 하지만 우리 둘이 걷는 겨울 하이킹도 좋았다. 비엔나 외곽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었고, 둘이 산길을 걸으며 호젓함을 즐겼고, 걷는 중간에 간식을 먹고 물을 마시며 쉬었던 시간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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