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미술 학원 수업에서 목탄으로 그리는 방법을 배웠다. 연필보다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느낌은 더 풍부하게 살릴 수 있었다. 목탄으로 그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잉크로도 그려보았는데 쉽지 않았다. 적응하려면 반복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새로운 미술 재료를 사용해 보니 넓은 미술 세계에 한 발 가까이 들어가 본 기분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무엇보다 관찰을 잘해야 한다. 모델을 제대로 보고 그린다고 생각해도 강사의 지적을 받고 다시 보면 잘못 본 것이 보였다. 강사(Irina)의 지적으로 어깨 위치를 조금 수정했더니 완성된 그림에서는 큰 차이가 났다. 그래도 가끔씩 잘 그렸다는 칭찬도 받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에서도 목탄으로 그리고 싶었는데 주변에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목탄 수업을 받을 때는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목탄으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아직까지 목탄으로 그리는 것을 시도하지 못했다. 혼자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벨베데레 미술관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은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어 있는데 모두 미술관이다. 우리는 사흘에 거쳐 벨베데레 상궁, 하궁, 벨베데레 21까지 관람했다. 벨베데레 21은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현대 미술관이다.
미술 학원 강사(Irina)는 벨베데레 하궁 미술관에서 아모아코 보아포의 그림이 전시 중이니 꼭 보라고 추천했다.
아모아코 보아포는 강사(Irina)와 비슷한 시기에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다고 한다. 졸업 후 '흑인을 그린 흑인'이란 이유로 비엔나 모든 화랑에서 그의 전시를 거부했다고 한다. 보아포는 백인을 그려보라고 조언을 들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바꾸지 않았고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보아포는 붓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특징이 있었고, 그의 진가는 미국으로 건너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후, 비엔나의 개인 화랑도 아닌 벨베데레 하궁 미술관에서 단독 전시를 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다.
전시된 그림 중 대다수는 보아포가 비엔나 아카데미에 다녔던 즈음에 그렸던 그림들이었다. 다른 시기의 그림보다 단연 돋보였다. 세상 사가 참 아이러니하다.
2024년도 작품은 소품 2개뿐이었는데 오히려 과거에 그린 그림만 못해 보였다. 절박함 속에서 예술은 꽃피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밤의 생난리….
윤석렬이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딸이 경찰이라 무척 걱정 되었다. 국회는 봉쇄되었지만 국회의원들이 모였다. 게엄이 해제될 때까지 너무 초조했다. 피만 안 봤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시민들은 한밤중에 국회 앞으로 달려갔고 국회로 가는 길이 주차장이었다고 한다. 거리에는 탱크가 돌아다니고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았다고 한다.
걱정스러운 가운데 국회의원들은 계엄 선포를 무효화시켰다. 국회를 점령했던 군인들은 퇴각했고 한 밤중의 난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충돌로 앞으로 모두가 고된 시간을 보내야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게엄 해제로 무엇보다 딸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했는데 고생을 하더라도 경찰 본연의 임무로 고생을 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유혈 사태 없이 나라의 문제들이 하나하나 풀려나가길 간절하게 빌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벨베데레 상궁 미술관을 관람했다. 상궁에는 클림트, 에곤 쉴레의 그림이 많아서 사람들이 오픈 시간부터 북적였다. 클림트와 에곤 쉴레에 대한 관심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엔나 1900 전시를 하는 중이었다. 전시 기획력에 대한 호평이 있지만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그림은 많지 않은 듯했다. 비엔나에 있으니 그림은 마음껏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유명한 화가는 자신만의 화풍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림트나 에곤 쉴레 또 다른 유명 화가들 모두 각자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그림만 봐도 누구 그림일지 추측이 된다.
전시실은 시대별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1900년대 이후의 그림은 오히려 퇴보한 것처럼 보였다.
기념품점에서 남편은, 내가 클림트를 좋아한다며 클림트 그림이 그려진 연필 깎기를 사줬다. 몇 년 전에 왔었을 때는 클림트 스카프를 사주었다. 비엔나는 클림트와 동의어이고 내가 클림트 그림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날 벨베데레 하궁 관람 후 가장 마음에 남는 그림은 에곤 쉴레의 '가족'이었다.
벨베데레 궁전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어서 구경했다. 선생남과 함께 단체로 온 초등학생들이 즐겁게 구경하며 이것저것 사 먹고 있었다. 우리는 따뜻한 와인과 핫도그를 사 먹었다. 크리스마스마켓 상점마다 와인 맛이 다른데 벨베데레 궁전 크리스마스마켓에서 먹은 와인은 특별히 맛있었다.
오는 길에 미술 용품점에 들러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구경은 즐거운데 나라가 뒤숭숭하니 심란했다. 뭐 하나 손에 안 잡혔다.
사흘 째 벨베데레 21 미술관도 방문했다. 현대미술은 도무지 모르겠지만, 1층 전시는 정말 화가 날 정도였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돈 놓고 돈 먹는 놀이처럼 느껴졌다.
2층의 전시는 일본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화가의 전시였다. 일본스러운 전시물과 끈으로 만든 입체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낯선 일본 문화라는 게 먹힌 것인지, 세밀한 작업… 미국인에게는 어려운 손가락의 섬세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도 예술이다.
지하의 전시는 컴퓨터와 모니터로 연결된 전시였다. 소리와 영상이 합쳐진 예술?이었다. 도무지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는 미술의 영역은 이미 무너졌다.
전시를 보며 감정이 정화되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은 많이 할 수 있었다. 유명한 화가가 되려면 첫 째, 자신의 스타일이 있어야 하고 둘째, 훌륭한 다작을 해야 하고 셋째, 본인에 대한 마케팅을 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술을 전공해도 화가가 되기 힘들고 화가가 되어도 성공하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의 길은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