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비가 꽤 많이 내렸다. 슈퍼만 잠깐 갔다 오고 핑계 김에 하루 종일 집에서 쉬다가 저녁에는 드로잉 수업을 갔다.
모델을 보고 그리는 수업이라 매번 모델이 바뀌는데 이날 모델은 80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힘든지 손이나 다리가 자꾸 떨렸고 자세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 나이에 모델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림을 자꾸 고쳐야 하는 것은 둘째치고 괜히 불안했다. 그러나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다른 수강생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쉬는 시간에 수강생들은 나이 많은 모델에게 궁금한 게 있는지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나라에서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과 대화는커녕 선을 긋는 모습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그 장면이 낯설었다.
비엔나에서는 어떤 일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데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문화가 신기하면서 부러웠다. 독일어를 모르는 나는 대화에 끼어들기 어려웠다.
한편 이 수업의 강사는 다른 수업의 강사에 비해 열의가 없었다. 수강생들이 모델을 보고 그리는 동안 대부분 시간을 그냥 지켜보았다. 특별히 지도하거나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 다가와, 사람을 그릴 때는 4B 연필 대신 2B 연필을 이용하고, 특히 여성의 코는 진하지 않게 그려보라고 조언했다. 2B로 그리니 훨씬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긴장이 풀리며 피곤이 몰려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과 포도주를 마셨다. 비엔나 주변에는 포도밭이 많고 포도주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도 많다. 그래서인지 오스트리아산 포도주는 값도 싸고 맛있다. 포도주는 비엔나 생활의 활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