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멜크 수도원과 뒤른슈타인 당일치기 여행

빈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멜크 수도원이 비엔나에서 멀지 않았다. 멜크를 여행하기로 했다. 대중교통이 애매해서 여행사의 멜크와 뒤른슈타인 투어를 할까 했는데, 아들이 자기도 안 가보았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우리 부부, 아들과 소피아는 차를 빌려서 멜크 수도원으로 향했다. 몇 년 전 '장미의 이름'을 읽을 때만 해도 진짜로 와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직접 가게 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멜크 수도원은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 어둡고 음침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실제 수도원은 노란색으로 밝고 아름다웠다. 생각보다 규모도 컸다. 시간이 오래되어 소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 속 장면과 수도원은 잘 매치되지 않았다.

도서관에 들어서니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냄새가 났다. 소설을 읽으며 인상적으로 남아있던 필사하는 수도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수도원은 촬영도 안되고 한 방향으로 정해진 동선을 따라 구경했다.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는 도나우강과 마을 전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예뻤다. 겨울이 아니고 날씨가 좋았다면 더 아름다웠을 거다.

기념품점에서 수도원에서 만들었다는 작은 술을 사고 지하에 전시된 그림까지 보고 수도원 구경을 마쳤다.


수도원에서 나와 멜크 거리를 걸었다. 작지만 예쁜 도시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투어로 온 단체 관광객들이 많아 좁은 거리는 북적였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켓도 보이고 식당도 보였지만 시간이 일러서인지 대부분 영업하지 않았다. 다행히 영업 중인 케밥집이 보여 얼른 들어갔다. 안은 따뜻했다. 점심을 먹으며 쉬었다.

멜크 수도원 주차장은 토요일에는 주차비가 무료라고 해서 조금 어리둥절했다. 우리나라와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오후에는 스피치 성을 보러 갔다. 근처에는 가파른 산에 계단식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스피치 성에 올랐다. 돌로 만든 성인데 거의 허물어져 있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꼭대기에 오르니 도나우 강이 보이고 강을 따라 기찻길도 보였다.


다시 차를 타고 뒤른슈타인으로 향했다. 이곳도 예쁘고 작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넓은 포도밭이 있고 유명한 와이너리가 있는 듯했다. 중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박하고 귀여운 크리스마스 장식이 좁은 골목 위에 걸려있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주로 술, 초콜릿 등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싸지는 않았다. 특별히 살 것도 없어 마을만 돌아보았다. 이곳에도 성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스피치 성에서 본 전망과 비슷할 것 같아 올라가지 않았다.


크림슨이란 조금 큰 도시에도 들렀다. 시청 주차장에 주차했는데 역시 토요일이라 주차비가 무료였다. 구시가지로 향해 걸으며 도시를 구경했다. 뒤른슈타인과 다르게 큰 건물들도 많이 보였다.

음악 소리와 와자지껄한 소리를 따라가니 성당 앞에 크리스마스마켓이 있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였다. 관광 도시는 아니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거리에 놓인 테이블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많았다. 분위기가 흥겨웠지만 오스트리아답게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음식 종류는 별 것 없었다. 우리는 따뜻한 와인과 굴뚝빵을 사 먹으며 잠시 쉬고 쇼핑가를 구경했다.


해가 빨리 떨어져 시간이 늦은 건 아니지만 금방 어두워졌다. 비엔나로 향하는 길이 좀 막혔지만 잘 돌아왔다.

빌린 차에 기름을 채우려고 주유소로 갔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그런 주유소가 아니었다. 건물 안에 있는 낡고 좁은 공간이 주유소라고 했다. 상상도 못 했던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니 비엔나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주유소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근쳐 패스트푸드점에서 저녁으로 치킨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 덕분에 편하게 여행했다. 아들은 운전하느라 힘들었겠지만 추억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라 아들과 소피아를 점심에 초대했다. 볶음밥, 제육볶음과 쌈, 오이 피클로 점심상을 차렸다. 커피를 마시며 소피아와 폭풍 수다를 떨었다. 내가 엉터리 영어로 무슨 말을 해도 소피아는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여자들의 수다에 남편과 아들은 혀를 내둘렀다.

아들은 잘츠부르크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시간에 맞춰 일어섰다. 우리는 대문에서 작별했다. 역까지 함께 가서 배웅해 주는 소피아가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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