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남편과 함께 비엔나로 와서 모델이 된 남자

빈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시내 구경을 한 후 바로 미술 수업을 가려고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렸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비를 맞으며 걸어 다녔다. 우리도 우산이 있지만 비를 맞았다. 그게 가능한 게, 비엔나의 비는 내리다가도 금방 그쳤고 또 우리나라처럼 무섭게 쏟아지지 않았다.


스테판 성당 근처부터 구경했다. 블랙프라이데 세일을 알리는 가게들도 있지만, 나는 살 게 없고 남편이 관심 있는 주머니 칼을 파는 매장은 세일을 안 했다.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기념품 파는 가게에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클림트 관련 물건만 파는 기념품점도 보였다. 나중에 선물을 살 때 참고하려고 두루두루 구경했다.

시간이 지나자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려 스케치북이 들어있는 배낭에 커버를 씌웠다. 우산을 펴는 사람들도 점점 늘었다.


구경하며 걷다 보니 유대인 지역에 들어섰다. 유대인 기념관과 추모비가 보였다. 근처에 규모가 크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마켓도 있었다. 잠시 쉴 겸 따뜻한 와인을 사 마셨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인지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동안 보았던 초등학교 하교 모습과 달랐다. 수수한 차림의 부모들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자신의 아이가 나오면 데리고 걸어가는 게 일반적이었고 당연히 학생들도 자유로운 사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본 초등학생들은 교복과 고급진 외투를 입고 있었다. 부모도 고급 옷에 부유한 티가 났고 대부분은 아이를 차에 태워 데리고 갔다. 검색하니 유대인 학교였다. 유대인의 경제력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가 사실인듯했다. 비엔나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다시 걷다 보니 국방부 건물이 보이고 여러 대사관이 나왔다. 시내 중심가의 쇼핑 거리를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지도를 안 보고 발길 닿는대로 걷다 보니 쇼핑 거리와는 멀어졌다. 많이 걸어서 힘들었다. 일찌감치 학교(VHS)로 가서 쉬다가 수업에 들어가려고 트램을 탔다.


강사의 사정으로 휴강했던 수업이 이 주만에 재계되었는데 수강생이 네 명밖에 출석을 안 했다. 강사도 늦었다. 강사가 늦어도 사람들은 느긋했다. 우리나라라면 수강생들이 강사가 늦는 이유를 묻거나 항의하러 사무실로 열두 번 오갔을 시간이었다.


자연스레 대화의 장이 열렸다. 몸이 아주 좋은 남자 모델에게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브라질에서 패션 디자이너였다는 모델은 비엔나에 온 지 이 주밖에 되지 않아 어학원을 다니지만 독일어는 못했고, 비엔나에 와서 모델을 시작했는데 두 번째 서는 거라고 했다. 아마 직업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누군가 비엔나에 온 이유를 물었다. 모델은 남편이 오페라 가수인데 비엔나에서 일을 하게 되어 함께 이주했다고 답했다. 순간 나는 놀랐다. 남자인데 남편이라니... 내가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적인 생각보다 아주 조금 더 열린 것뿐이었다.


그제야 사무실 직원은, 강사가 교통 문제로 늦는다고 알리러 왔다. 사람들은 그냥 수업을 시작하자고 했고 모델은 포즈를 취하고 사람들은 그림을 그렸다. 잠시 후 강사가 도착했고 별 이야기 없이 수업은 계속되었다.

이 날도 머리 비율에 대해 지적받았다. 연필을 들고 측량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도 반복 훈련이 없이 터득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집에 와 검색해 보니 브라질은 진작 동성혼이 합법화되었고 동성 커플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오스트리아도 2019년에 동성혼이 합법화되었다고 한다. 브라질이나 오스트리아 모두 기독교 국가이고, 교황도 동성 커플에게 축복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케케묵은 사고방식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는 걸까? 이러저러한 생각이 많이 드는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14. 장고 끝에 산 색연필, 미술용품에서 기념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