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비엔나 하이킹 코스 5를 걸었다. Floridsdorf 지하철역에서 또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 출발점이었다. 포도밭을 도는 코스인데 방향 표시가 잘 되어 있었다.
포도밭을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남편과 추억을 나눴다. 스페인의 포도나무는 키가 작았는데 이곳의 포도나무는 컸다.
포도밭 근처에는 포도 저장고처럼 생긴 곳도 곳곳에 보였다. 포도와 포도주 운반을 하기 위해서인지 동네의 길바닥이 돌로 되어있었다. 아스팔트가 없던 옛날에 돌로 잘 정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돌아오는 길 Floridsdorf 지하철역 앞에 작은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주민들만 보였다. 랑고스와 핫 와인을 샀다. 시청이나 시내 중심의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마켓보다 랑고스와 와인 값이 쌌다.
랑고스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뒤에서 함께 폼을 잡았다. 나이도 있고 점잖게 생긴 주인아저씨의 행동에 주변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무뚝뚝해 보이는 비엔나 사람들이지만 겪어보면 부드럽고 친절했다.
집 근처 지하철역으로 오니 크리스마스트리에 사용될 나무를 팔고 있었다. 나무들이 굉장히 컸다. 영화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커다란 나무를 사 오는 장면을 봤었는데 실제로 파는 장면을 보니 신기했다. 누가 살까 싶었는데 사람들은 나무를 사기 위해 흥정하고 있었다. 그 많은 가게에서 장식품을 파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며칠 후 비엔나 하이킹 코스 8을 걸었다. 49번 전차 종점에서 또 버스를 탔는데 버스는 대중교통 버스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고급졌다. 비엔나 하이킹 코스까지 가는 데중교통은 모두 비엔나 패스로 가능해서 따로 교통비가 들지 않았다.
초반부에는 조금 가파른 언덕길이었지만 도장을 찍은 이후로는 평탄한 산길이었다. 넓은 풀밭이 펼쳐지다가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풍경은 좋은데 한동안 진흙탕 길을 걸었다. 발은 푹푹 빠지고 신발에 커다란 진흙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무겁게 느껴져 한 걸음 옮기기도 힘들었다. 그 길을 제외하면 이날 하이킹도 좋았다. 도장을 7개 모았다.
비엔나 하이킹 코스 중 3개를 완주하면 실버 배지, 7개면 골드 배지, 12개면 플래티넘 배지를 주는데 우리는 금 배지를 받을 자격이 생겼다.
배지를 받으러 시청으로 갔다. 빗속에 하이킹을 여러 번 해서 너덜너덜해진 책자에 찍힌 도장 7개를 보여주었다. 시청 직원은 골드 배지뿐 아니라 실버 배지도 주었다. 뿌듯했다. 비엔나 두 달 살이의 보람처럼 느껴졌다.
하이킹 덕분에 비엔나 주변을 두루두루 구경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운동도 되었고 생활에 활력도 되었다. 목표 달성을 했으니 남은 하이킹 코스는 다음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