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각자 편하게 걷고 싶은 평범한 비엔나의 하루

빈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그동안 배웠던 다른 드로잉 수업들은 진작 마무리되었다. 목요일에 가던 수업 마지막 시간이었다. 이 수업은 이론 설명이 많고 수업 뒷부분에는 각자 그림에 대한 수강생 간의 의견 교환과 강사의 코멘트가 있어 항상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제스처라는 개념, 배경을 어둡게 하면 멀어 보이고, 지우개를 이용하여 경계 부분을 정리하는 것 등을 배웠다.

강사의 개인 사정으로 휴강을 몇 번 해서 남은 수업은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 뒤로 밀렸다. 일 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만큼 놓치는 수업이 늘었다. 남편은 못 듣는 수업 수강료를 환불하라고 했지만, 그 과정을 생각하니 까마득해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할 에너지가 없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는 청소부가 이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대청소를 하고 침대보를 갈아주었다. 청소부가 온다고 해서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쇼핑센터에서 소피아 엄마 생일 선물로 초콜릿 세트를 샀다. 그동안 무엇을 살까 별별 궁리를 다 했는데 선물을 사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나온 김에 평점이 좋은 인도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점심 뷔페였다. 8유로로 저렴하지만 밥, 카레 4가지, 난, 샐러드,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치킨 카레는 우리 입맛에 잘 맞았고 난도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식당 직원의 태도에 별로 신경 쓰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친절한 주인의 태도에 기분은 좋았다. 주인은 우리가 두 번째 방문한 한국 사람이라며 반가워했다. 자신은 채식주의자라 식사 때문에 여행이 힘들지만 이모는 한국을 갔다 온 적이 있다고 했다.

방문하기 좋은 곳을 소개해준다며 우리가 이미 갔다 온 비엔나 하이킹 코스 1의 전망대며, 잘츠부르크, 부라티슬라바 등을 여행해 보라고 추천했다. 그러더니 식당에 대한 평점과 댓글을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음식 맛도 좋았지만 열심히 장사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덕분에 유쾌한 점심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해가 떴다. 비엔나의 겨울은 해가 나는 날이 드물어 늘 음산했는데 파란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집에서 가까운 쉔부른 궁전으로 갔다. 날씨도 좋고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쉔부룬 궁전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남편은 가벼운 산책보다는 운동하려는 마음이었는지 빠르게 걸어서 앞서 나갔다. 뒤에서 따라가는 게 싫어 함께 걷자고 말했다. 남편은 뒤돌아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팔을 벌리며 팔짱을 끼라고 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내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냥 각자 편하게 걷고 싶어졌다. 나이가 드니 팔짱 끼고 걷는 것도 어렵다. 정원이 넓어 한 바퀴 도니 거의 6km 정도 걸었다.

언제 두 달이 지나갈까 싶었는데 집으로 다가올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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