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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1. 2024

6. 공휴일 식당 영업을 오해하고 (4월 10일 월)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수비리 zubiri ~ 팜플로나 pamplona      

  어제는 부활절이었고 오늘도 공휴일이다. 스페인은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대부분 상점과 식당이 문을 닫는다. 어제 수비리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몸을 씻는데, 누군가 급박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오늘 3시부터 내일까지 모든 가게와 식당이 영업하지 않는다네요. 굶지 않으려면 슈퍼마켓에 가서 내일 먹을 것까지 사 오라고 합니다. 얼른 움직이세요.”

  3시가 다 되어가던 때라 그 말의 사실 여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샤워하다 말고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기만 닦고, 동네에 하나밖에 없다는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다른 사람들도 슈퍼마켓이나 식당으로 뛰었다.

  슈퍼마켓에서 사 온 음식들로 대충 저녁을 먹고, 실내가 추워서 해가 있는 따뜻한 밖으로 다시 나갔다. 그런데 저녁 늦은 시간임에도 영업하는 식당이 있고 빵 가게에서는 빵도 팔았다. 갑자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앞뒤 생각 없이 헐레벌떡 슈퍼마켓으로 뛴 생각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오늘 새벽, 어제 사두었던 바나나, 요구르트, 빵으로 아침을 먹고 팜플로나로 출발했다. 부활절 다음 날이라 모든 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소문을 믿지 않으면서도 비상식량(?)으로 과자와 초콜릿을 단단히 챙겼다.      

  걷다 보니 해가 떴다. 목초지도 지나고 동화 속 그림 같은 마을도 지났다. 말 목장을 지나는데, 선한 눈을 가진 말 한 마리가 다가왔다. 이렇게 말을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한참을 서로 마주 보았다. 특별한 느낌이 들었고 돌아설 때는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말과 교감했던 아주 특이한 체험이었다.     

처음 보는 말과 서로 통하는 느낌이 드는 교감은 특별했다.

  출발 후 10km쯤 지나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나타났다. 어제 들은 소문과 다르게, 공휴일이지만 (순례자들을 위해서) 영업하고 있었다. 우리는 커피와 호박파이를 사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었다. 맛있는 호박파이를 먹고 커피도 마시며 쉬었다. 

  속속 도착하는 순례자들도 무언가를 사 먹고 쉬며 화장실도 이용했다. 전날 우리와 같은 알베르게를 이용했던 젊은 순례자 두 명도 도착했다. 젊은이들은 어제 사두었던 하루 지난 샌드위치를 배낭에서 꺼내며 우리와 멋쩍은 웃음을 주고받았다.     


  휴일이라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며 운동하는 주민들과 마주쳤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순례자들에게 호의적이라는 게 느껴졌다. 우리도 “올라(안녕)”, “부에노스 디아스(좋은 아침)”를 반복했다. 

  걷고, 또 걷고, 또 걸었다. 도중에 수도가 보였고 단추를 누르니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졌다. 우리는 가지고 다니는 정수 물통(카타딘 비프리)에 새로운 물을 보충했다. 마시는 게 가능한 깨끗한 수돗물이지만 혹시 몰라 우리는 정수 물통에서 물을 한 번 걸러 마셨는데 아무런 문제없다.     

 

  작은 산을 넘으니, 도시가 나타났다. 며칠 동안 한적한 좁은 시골길만 걷다 도시에 들어서니 어색했다. 

  순례자들이 헤매지 않도록 길바닥과 벽 등 곳곳에 순례길 표시와 노란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표시를 따라서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팜플로나에서는 이틀을 머물며 도시를 구경할 계획이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소문에 홀려, 어제는 샤워하다 말고 슈퍼마켓으로 달렸지만, 오늘은 영업하는 카페에서 밥을 먹었다. 주변에 널려있는 정보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각 개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실감한 하루였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다 똑같다.

                                                                 

공휴일이지만 영업하던 카페 앞에 서 있던 철로 만든 순례자 조형물은 우리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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