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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1. 2024

5. 갈등 해결은 걸으면서 (4월 9일 일)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 ~ 수비리 zubiri     

  알베르게(기숙사)에서 머물던 순례자들이 (같은 식당에서 쿠폰을 이용함) 다 함께 아침을 먹고 비슷한 시각에 출발했다. 긴 순례 행렬이 만들어졌고 그 모습은 영화 한 장면 같다. 순례 행렬은 시간이 지나며 각자 걷는 속도에 따라 흩어졌다.

  나는 추워서 가지고 있는 옷을 모두 껴입었지만, 반바지를 입거나, 셔츠 하나만 달랑 입은 순례자도 있었다. 반면 겨울 패딩에 두꺼운 패딩 장갑까지 낀 순례자 등 차림새가 다양했다.                                                                      

각자 속도와 방식대로 걸어가는 순례자

  이국적인 건물과 중세 느낌이 남아있는 마을을 지났다. 해가 높아지며 기온이 오르고 점점 더워져 머리에 쓰고 있던 비니를 챙모자로 바꾸고 겉옷도 벗고 선글라스를 꼈다. 

  또 다른 마을과 말들이 한가로이 있는 풀밭도 지났다. 목적지인 수비리까지 가는 길은 거리가 짧고 산도 아니라 쉬울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돌로 이루어진 언덕길과 비탈길이 반복돼서 걷기 힘들었다. 다른 순례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쉬다 걷기를 반복했다. 

  론세스바예스에는 가게가 없어 알베르게에서 파는 점심 도시락을 사 왔다. 도시락 주머니에는 샌드위치, 물 한 병, 사과, 곡물 시리얼 바가 들어있었다. 점심때 나무 둥치를 찾아 앉아서 샌드위치를 꺼내먹었다.    

  

  남편은 오늘도 일방적으로 배낭을 택배로 보냈다. 어제 배낭을 안 메서 수월하게 피레네산맥을 넘었지만, 남편은 서울에서부터 지금까지 배낭 택배에 관해서 한마디도 안 했다. 

  내가 배낭 택배 관련 이야기를 하면 대충 얼버무리는 남편이 나를 무시하는 듯해 기분이 상했다. 함께 걷는 것이 회의감이 들고 그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며 잠시 신경전을 벌였다.

  불편한 상황을 바꾸고 싶어 대화를 나눴다. 방해받을 일 없고, 시간도 충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고 남편이 하는 말도 들었다. 

  걸으면서 대화하니 감정이 격해지지 않고 차분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배낭 택배는 상황에 따라 이용하기로 했고 수비리에 도착하기 전에 앙금을 털고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수비리는 개울이 흐르고 목장이 있는 작고 예쁜 시골 마을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스페인 시골 작은 마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Albergue-Rio Arga IBAIA) 방 10명 중 7명이 우리나라 사람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우리나라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알베르게 시설은 만족스러웠지만, 돌로 만든 건물이라 실내가 춥고 냉해 밖에 나가 햇볕을 쬐다 들어오곤 했다.

  목적도 없이 순례길에 덜컥 나선 내가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팜플로나라는 큰 도시로 간다고 하니 궁금하다.

가슴에 품고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예쁜 풍경이 있는 수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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