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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1. 2024

4. 피레네산맥 넘기 (4월 8일 토)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생장 Saint Jean Pied de Port ~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      

  파리 도착한 지 나흘째,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이다. 긴장되어 새벽 일찍 잠이 깼다. 오늘은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가는 가장 힘든 구간이란다. 남편은 가장 힘든 날이니 배낭 택배를 이용하자고 했다. 

  남편 배낭에 모든 짐을 넣고, 택배 신청서 봉투에 돈을 넣고 오후에 도착할 알베르게(기숙사) 주소를 써서 매달았다. 남편은 지정된 장소에 배낭을 놓고, 택배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걸으면서 필요한 것들은 내 배낭에 넣어 남편이 메고 출발했다.

  어둠이 걷히고 해가 나오자,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하늘과 화창한 날씨 덕분에 기분이 상쾌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피레네 산은 가파르지는 않지만, 규모가 커서 걸어도 걸어도 산이 끝나지 않았다. 눈 덮인 하얀 봉우리가 앞쪽 멀리 까마득하게 보였는데 한참 걷고 보면 뒤쪽 발아래로 보였다. 또 멀리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걸었다. 배낭을 안 메고 걸어서인지 걱정했던 만큼 힘들지 않았다.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오리손 카페에서 달콤한 커피와 또르띠아를 사 먹었다. 걷다 보이는 식수대에서 물도 보충했다. 적당한 곳에 앉아 신발까지 벗고 햇볕을 쬐며 챙겨간 오렌지, 치즈, 빵을 먹으며 쉬었다. 먹고 쉬면 걸어갈 힘이 다시 났다. 

피레네산맥 나폴레옹 길 조형물 앞에선 남편


  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30km 이상 걸었고 더는 못 걷겠다고 느껴질 즈음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피레네산맥을 무사히 넘었다. 알베르게에서 봉사하는 분들은 모두 친절했고, 침대와 베개에는 일회용 커버를 씌우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샤워하고 짐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근처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니 걷느라 힘들었던 피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론세스바예스는 워낙 작은 곳이라 돌아볼 곳도, 일반 사람들이 사는 집도, 가게도 없다. 식사는 체크인할 때 샀던 쿠폰으로 근처 식당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먹었다.

  남녀 구별 없이 여러 사람이 같은 방 이층 침대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낯설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다. 가장 힘들다던 첫날이 무사히 지나간다.      

성당과 알베르게를 제외하고는 일반 집도 가게도 없는 작은 론세스바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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