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캠핑
주말 아침, 라라는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가방을 놓고 짐을 챙기고 있었어요.
“램프도 챙겼고, 침낭도 챙겼고…”
무엇을 더 넣을까 고민하는 그때, 고양이 티티가 라라 주위를 살며시 한 바퀴 돌았어요.
“야옹!”
‘어디 가는 거냐옹?’
티티의 목소리가 라라의 머릿속에 울렸어요.
“오늘은 미로씨네 캠핑장에 가는 날이야!”
라라는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켰고, 환한 불빛에 눈을 깜빡였어요.
‘캠핑은 누구랑 가는 거냐옹?’
티티가 궁금한 듯 물었어요.
라라는 선반에서 반짝이는 나침반을 꺼내 가방 앞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으며 대답했어요.
“오늘은 요정 왕자님이랑 하늘토끼인 요끼와 함께 가기로 했어!
부모님이 주말에 캠핑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봐~”
망원경을 꺼내 눈에 가져다 대고 주변을 살펴보던 라라는
핑크색으로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두 개의 구멍이 벌렁거리는 것을 보고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어요.
“언제 오는 거냐옹?”
티티의 노란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반짝였고,
라라는 그 반짝임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망원경을 다시 가방에 넣었어요.
“하루만 자고 올 거야. 미로 씨가 별님이랑 달님을 그려주기로 했거든!”
지도를 차곡차곡 접어 가방에 넣고 있을 때,
티티는 라라의 등에 몸을 비비며 다정하게 문질렀어요.
“나도 가는 거냐옹?”
티티의 기대 어린 목소리에
라라는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배낭을 멨어요.
“아니, 티티야. 이번 캠핑은 미리 신청해야 해서... 다음엔 꼭 같이 가자.”
라라는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티티를 바라보았어요.
티티는 살짝 토라진 듯 시무룩한 얼굴로 소파 뛰어 올라갔어요.
“그럼 다녀올게! 선물 꼭 가져올게!”
라라가 다정하게 말했지만,
티티는 말없이 부드러운 쿠션 위에 앞발을 가지런히 모았어요.
“스윽…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라라가 떠난 아파트엔
이른 아침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았고,
티티는 따스한 햇살 속에서 얼굴을 쿠션에 묻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버스에서 내린 라라는 지도를 손에 들고 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망원경을 들여다보니, 저 멀리 초록빛 산자락에서 하늘토끼 *요끼가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내려오고 있었죠.
요끼는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장난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깔깔 웃었어요.
주말에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에 무척 신이 나 보였지요.
라라를 발견한 아빠토끼가 말했어요.
"구름에 일이 생겨서, 바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라라가 요끼의 손을 잡으려 하자, 요끼는 손을 휙 뿌리치고 나무 위로 올라가 소리쳤어요.
"나 잡아보세요~ 아빠, 나 찾아봐요!"
아빠토끼는 웃으며 요끼를 번쩍 안아 나무 아래로 데려다주었어요.
요끼는 입이 살짝 삐죽 나왔지만, 아빠가 챙겨준 산딸기를 보자 금세 기분이 풀렸어요.
아빠토끼는 미소 지으며 말했어요.
"내일 데리러 올게요. 요끼야,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아빠가 떠난 뒤, 요끼는 라라에게 다가와 물었어요.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오늘은 산속 캠핑장이에요," 라라가 웃으며 말했어요.
"싫어요. 바다로 가고 싶어요."
요끼의 말에 라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그렇지만 미로 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로 씨가 누군데요?" 요끼는 팔짱을 끼고 뺨을 부풀리며 물었어요.
라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어요.
"미로 씨는 캠핑장 주인이자 화가예요. 오늘 밤, 달과 별을 그려주신대요!"
하지만 요끼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어요.
"싫어요. 달이랑 별 그리고 싶지 않아요."
라라는 잠시 당황했지만 부드럽게 물었어요.
"그럼 요끼는 뭘 그리고 싶어요?"
요끼는 말없이 고개를 돌리더니, 투덜대듯 말했어요.
"그림 안 그리고 싶어요!"
그 순간, 라라의 머리 위로 조용히 땀방울 하나가 맺히려던 찰나—
나무요정 왕자님이 조용히 다가왔어요.
"그럼…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말해줘요!" 라라는 고개를 돌려 나무요정 왕자님을 바라봤어요.
종이상자 가면을 쓴 나무요정 왕자님은 주변을 살피며 가방끈을 꼭 붙잡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나무요정 왕자님~"
라라는 환하게 인사했어요.
캠핑장으로 걸어가는 내내, 나무요정 왕자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라라는 왕자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어떤 놀이 하고 싶어요?”
“어떤 그림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왕자님은 고개만 살짝 돌린 채, “아무거나요.”라고 대답했을 뿐이었어요.
산길을 오를수록 점점 숨이 차고, 날씨도 더워졌어요.
라라는 왕자님의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보고 말했어요.
“왕자님, 더우면 그 종이 가면을 벗는 건 어때요?”
왕자님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라는 문득 궁금해졌어요.
“왕자님, 그 가면은 왜 쓰고 있어요?”
왕자님의 가면은 축축하게 젖어 불편해 보였어요.
왕자님은 조용히 대답했어요.
“다른 나무들이 저를 알아볼까봐요.”
라라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 그렇군요.”
하지만 라라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여긴 요정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나무들이 어떻게 알아볼까?’
왕자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라라는 더는 묻지 않기로 했어요.
요끼는 여전히 산으로 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투덜거렸고, 왕자님도 아무 말이 없었어요.
라라는 점점 숨이 가빠지고 온몸에 땀이 흘렀어요.
그 순간, 저 멀리 캠핑장에서 미로 아저씨가 보였어요.
“미로 아저씨! 여기예요~!”
라라는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로 외쳤어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미로 아저씨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곧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손을 흔들었어요.
라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아저씨에게 달려가 안겼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아저씨!”
미로 아저씨는 눈웃음을 지으며 라라의 짐을 들어 텐트 쪽으로 향했어요.
“모두들, 미로 캠프에 온 걸 환영해. 일단 짐부터 텐트에 두자꾸나.”
텐트 안에는 작고 귀여운 치와와 한 마리가 앉아 있었어요.
“멍!”
아저씨를 보자 반가워 달려오던 치와와는, 낯선 친구들을 보자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어요.
“크르릉…”
라라는 조심히 가방을 내려두고 텐트 밖으로 나왔어요.
커다란 침엽수로 둘러싸인 숲은 시원하고 푸르렀고, 텐트 앞에는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었어요.
계곡 주변에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어 있었고, 그 위로 나비 한 마리가 살포시 날아올랐어요.
“아저씨, 친구들이랑 계곡 구경하고 올게요!”
계곡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어요.
빨간색 양귀비꽃, 파란색 팽이꽃, 보라색 나팔꽃, 산호색 장미꽃, 하얗고 작은 안개꽃도 가득했지요.
마치 화원을 옮겨 놓은 것처럼 화려한 꽃들 사이로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었어요.
라라는 겉옷을 벗어 바위 위에 올려놓고, 흐르는 물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보았어요.
시원한 물이 라라의 손가락을 피해 내려갔어요.
요끼도 신이 나서 물속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리고 날개를 힘차게 저어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뛰어들기를 반복했어요.
나무 요정 왕자님도 바위에 앉아 있다가 물이 궁금했는지 천천히 계곡으로 들어왔어요.
왕자님은 두 손을 계곡물 사이에 넣어 보았어요.
시원한 물줄기가 손끝에서부터 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지요.
라라의 등 뒤로는 뜨거운 햇살이 금빛으로 반사되며 내려오고 있었어요.
꽃들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 보였어요.
커다란 말이 나무 옆으로 내려와 물을 마시고 있었고, 아기 돼지들은 엄마 돼지의 젖을 먹고 있었어요.
라라는 계곡물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갔어요.
물은 점점 깊어졌고, 어느새 몸의 반 이상이 물에 잠겼어요.
라라는 몸을 물속에 밀어 넣고, 얼굴만 내놓은 채 다리를 쭉 뻗었어요.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꽃밭에서 몸을 비비고 있는 요끼의 모습이 보였어요.
왕자님은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가면을 벗어 햇볕에 말리고 있었어요.
라라는 왕자님의 얼굴이 궁금했지만, 그늘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어요.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몸을 일으켰을 때, 왕자님과 눈이 마주쳤어요.
왕자님은 놀란 듯 빠르게 가면을 주워 머리에 썼어요.
라라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어요.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자 문득, 티티에게 줄 선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물에서 나와 바닥을 살피며 도토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풀숲에 앉아 있던 요끼와 부딪쳤어요.
“아파요.”
요끼는 아까와는 다르게 시무룩한 표정이었어요.
라라가 물었어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아파요! 아프다고요! 안 괜찮아요.”
라라는 머리를 긁적였어요.
“도토리를 찾다가 그랬어요. 미안해요.”
요끼가 물었어요.
“도토리는 왜요?”
“친구에게 줄 선물을 만들려고요. 도토리 목걸이요.”
라라는 대답했어요.
“요끼도 같이 찾아볼래요?”
요끼는 고개를 홱 돌리고 말했어요.
“싫어요. 근데 도토리는 어떻게 생겼는데요?”
라라는 주머니에서 도토리를 꺼내 보여주었어요.
“이렇게 생겼어요.”
요끼는 라라의 손에서 도토리를 확 채갔어요.
“이거 나 줘요.”
라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어요.
“목걸이를 만들려면 부족할 것 같은데… 그럼 좀 더 찾아볼게요. 알았어요.”
요끼는 도토리를 손으로 툭 쳐서 굴렸어요.
몇 번을 여기저기 굴리더니, 결국 도토리를 발로 밟아버렸어요.
그리고 다시 라라에게 달려왔어요.
“도토리 하나 더 주세요.”
라라는 부서진 도토리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이번엔 요끼가 한번 찾아볼래요?”
라라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요끼는 숲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토리를 찾았어요.
하지만 도토리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고, 요끼는 다시 라라에게 돌아왔어요.
“그냥 도토리 주면 안 돼요?”
라라는 웃으며 대답했어요.
“이건 제 친구 목걸이를 만들 거예요.
찾기 어렵다면, 요끼 도토리는 제가 같이 찾아줄게요!”
라라는 요끼와 함께 도토리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큰 나무 아래, 나무 요정 왕자님 옆에서 도토리를 발견했어요.
“찾았다!”
라라와 요끼가 동시에 외쳤어요.
라라는 요끼를 향해 웃으며 말했어요.
“정말 잘 찾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