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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Jun 05. 2024

닿을락 말락 홍시 따기

자라 가는 아이들

바위에 앉아 홍시를 탐했다.

감꽃을 떨구고 얼굴을 살포시 빼꼼 내밀 때부터 나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콩만 하던 것이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 점점 점점 자라더니 아버지 주먹만 하게 커지더라


바위에 앉아 홍시를 찜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빨갛게 익는 내 얼굴 부럽다 할 때부터 나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초록에서 연두로 노랑으로 얼굴빛이 맑아지더니 볼그레한 수줍은 미소 살짝 쿵 띄우더라


바위에 앉아 홍시를 받았다.

매미 소리 잔잔해지고 고추잠자리 하늘을 날 때부터 나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청룡이 품고 있는 동실동실 붉은 여의주 내 품에 안길 날, 바로 오늘! 하늘에서 툭! 



가을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던 휴일,

정침터로 밭일을 따라나섰다.

짜그락짜그락 자갈밭 매는 엄마의 거친 호미질, 

첨벙첨벙 밀짚모자 아래로 후두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이 흥건하게 배인 아버지 곁에서

아이들,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몸을 배배 틀었다.

둘째 언니, 셋째 언니 그리고 동생,

따가운 햇볕아래 손은 갈피를 못 잡고 흐느적흐느적 게으름을 부렸다.


정침터 미끄럼틀 바위 옆 감나무 한 그루, 6남매의 간식 나무, 반시 감나무가 있었다.

밭에 도착했을 때부터 눈독 들이고 있었다.

일찌감치 제 것으로 찜해놓은 홍시, 탱글탱글 빨간 볼살 터질 듯하였다.

아이들 마음 콩밭에 가 있었다.


"아이고! 더버라!"

"목 축이게 그 홍시 있는지 가 봐라"


엄마 말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 흙도 묻지 않은 호미를 내던지고 감나무로 내뺐다.

이럴 때는 날쌔다.

나무늘보 아이들, 날다람쥐 되어 날아갔다.

자유낙화한 성질 급한 홍시, 자박자박 내려가 거둬들이고

다 자라지도 않은 팔로 손 재래가는 곳의 홍시 따서

아버지 먼저 드리고 

그리고 엄마, 차례대로 하나씩 나눠 먹었다. 

간에 기별을 하였다.


먹고 재비 아이들, 홍시 하나로 성이 찰까나? 어림도 없지.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넘어가서 어디에 붙였는지 모르겠는 홍시.

어디 또 없나?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앙증맞은 손가락 망원경으로 유심히 찾아보았다.


"저기 저기, 저기 있다!"

"어디? 어디?"


빨갛게 여문 홍시,

팔을 아무리 뻗혀도 닿을락 말락

발을 아무리 들어도 닿을락 말락

천방지축 아이들, 발을 동동 굴렸다.


천상보화 찾자마자 먹구름을 드리운 아이들, 

손끝에 얄랑 얄랑 감나무 홍시 보고, 이대로 포기할 아이들이 아니지.

발끝에 간들간들 감나무 홍시 보고, 그냥 지나칠 아이들이 아니지.


우리가 누구냐?

은근과 끈기 단군할아버지의 자손들이다!

우리가 누구냐?

한다면 하는 아이들이다!



지혜로운 둘째 언니, 인간 동아줄을 만들자 제안했다.

    "어떻게?"

"어제 테레비에서, 

 물에 빠진 사람, 그 주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밧줄을 만들어 구하던 것 봤제?"

"우리도 그렇게 해 보자, 튼튼한 사람줄을 만들어 보는 거다"

"우리가 한마음이 되어 뭉치다면 저기 저 홍시 딸 수 있을 거다"

      "사람줄?, 인간줄?"

"짚으로 새끼 꼬듯이 손에 손을 잡고 새끼줄 꼬단 생각하면 된다"

멋모르는 동생들 무조건 

     "좋아 좋아!" 끄덕끄덕

     "뭉치면 딴다!, 뭉치면 산다! 뭉치면 딴다!"

흐린 낯빛 걷어내고 싱글벙글하였다.


누가 선봉장에 설 것인가? 이제는 그것이 문제로다.

용감한 셋째 언니가 나섰다.

주르르륵 주르륵주르륵 미끌미끌 미끄럼 타기,

헐거운 신발 밑창에 불을 붙여 타던 바위, 까딱했다간 골절상, 타박상을 말로 주던 바위였다.

재미를 내세워 아이들을 잡아 두고 안전에는 1도 관심 없는 바위, 

겁 많은 아이들, 바위 끝자락으로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난관을 해결하러 바위 난간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언니,

바위 벼랑 끝에 조심조심 선 언니의 침착한 손을 둘째 언니가 꽉 움켜 잡고, 

그 손을 이어받아 내가 안간힘을 다해 잡고, 

순둥순둥 귀염 동생 젓 먹던 힘을 더해 짱짱하게 잡았다.

탄탄한 믿음을 엮어 만든 우애 깊은 동아줄, 절대 끊어지지 않는 연줄을 완성하였다.


예쁘기로 소문난 셋째 딸, 언니가 발을 일자로 들어 올렸다.

우아한 발레리나가 된 혜야언니, 발끝으로 서서 홍시를 향해 몸을 천천히 기울였다.

형제들에게 오직 손 하나 맡겨놓은 체 감나무에 걸린 붉은 해를 향해 팔을 쭉 뻗었다.


당겨 당겨! 

영차 영차!

좀만 더 좀만 더, 더 더 더 더 더!

톡! 

와~와! 와~와! 와~와!


주홍빛이 영근 맑은 해, 혜야언니가 받았다.

반으로 가르고 또 반으로 갈라서

초로록 초로록 초록 초록

달콤 보들 실타래 사르르르 단박에 굴러갔다.

타박 촉촉 참새미 미끄덩 단박에 넘어갔다!



"봐라, 봐라. 힘을 합치니까 되었째?"

"똘똘 뭉치면 못 이룰 게 없다"

"맞다! 맞다!"

"언니 최고!"

"사람줄! 인간줄! 우애줄!"

"누나 최고!"

"동생 너도 잘했어!"

오홍 오홍 어흥 어흥 팔짝팔짝 웃었다.


까르까르 까르르 쪼무래기 힘 모아 얻은 홍시 하나

만개한 함성, 하늘까지 닿았다.

두터운 우애로 얻은 값진 홍시 하나

자라 나는 아이들, 심장이 요동쳤다.

높고 푸른 하늘

감나무에 달린 홍시, 옹골차게 영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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