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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02. 2024

여름을 떠나보내다

천일홍 꽃차를 마시며

새벽의 여름은 젖는다

열기를 장전한 태양이 나갈 채비하는 길 막아서며 걷는다

찐득찐득 끈적한 공기가 매달리며 이슬비 되어 축축하게 젖는다


대낮의 여름은 흐른다

포효하는 태양이 빗발치는 길 꾹꾹 눌러 밟고 걷는다

후끈후끈 달궈진 공기가 달라붙어 장대비 되어 흥건하게 흐른다


한밤의 여름은 내린다

뒤끝 작렬한 태양이 드러누운 길 뿌리치며 걷는다

쉰내 짠내 텁텁한 공기가 늘어지며 장맛비 되어 질척하게 내린다




천일홍 꽃차를 마시며,

어제 나는 그간 나에게 빌붙어있던 지리멸렬한 여름을 말끔히 떠나보냈다.


상담 샘이 여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시며, 

마지막 무엇을 할까 고민하시다,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오셨다며,

가방에서 신문지에 싸인 무언가를 꺼내셨다.


차 한잔 나눠보고 싶어서 손수 꽃을 따서 덖었셨다며,

앙증맞은 유리잔에 따뜻한 물을 따르고 천일홍을 띄웠다.

오므려있던 꽃잎이 살포시 피어나 한가로이 유영하였다.

움츠려있던 꽃색이 제 발로 걸어 나와 자유로이 유영하였다.


선생님, 

꽃이 점점 활짝 피고 있어요.

색이 점점 진하게 우려나고 있어요.

음~ 꽃이 참 예쁘요! 색도 참 예쁘요!


눈으로 

천일홍 차를 마시며 나는 울고 있던 나를 떠나보냈다.

입으로 

천일홍 차를 마시며 나는 환하게 웃음 짓는 나를 맞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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