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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30. 2024

선배가 오빠 동생 하잖다 4

백지로 보낸 답장

새 봄이 찾아왔다.

학생회 간부들만 참석하는 법회를 마치고도 아직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토요일 지옥버스.

친구들과 강당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데 교법사 선생님 나무 아래 A선배가 서 있었다.


저기 00 오빠 아냐?

여기 웬일이지?


고등학생이 된 A선배,

지금 이 시각 읍내에 있거나 본가에 있거나 할 선배가 내 눈앞에 있다니, 

순간 눈이 놀라 중력에서 벗어날 뻔하였다.

옆에 친구들은 선배의 등장을 두고 조잘조잘 궁금증을 캐고,

남자동기들은 선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본체만체 지나갔다.


그러니 한 친구가 느닷없이

"미경이의 높은 콧대 아무도 못 꺾지, 못 꺾어" 불쑥 혼잣말을 하였다.

   "뭔 소리 하는 거야" (화들짝 놀라며)

"너는 네 콧대가 얼마나 높은 지 모르지?" 

   "알아, 내가 콧대 하나는 잘 섰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콧대 자랑을 하였다.


'풍문을 들었나?'

'그럴 리 없어'

친구의 말이 괜스레 신경 쓰였다.



막차를 타고 귀가한 어느 날, 

편지가 한통 와 있었다.

우리 집에 오는 편지 다 검열 대상인데 편지봉투가 온전하다. 그렇다는 것은........

보낸 사람이 여자 이름이라서 그냥 두었다 하셨다. 


'누구지?'

편지를 열었다.

수려한 필체, 화려한 문장에 눈이 몽글몽글 일렁였다.


대답 없는 나를 두고 애 태우며 속절없이 보낸 지난 시간을 후회한다고,

눈에서 멀어지면 멈출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생각에 방황하고 있다고,

나의 마음이 어떠하든 백지라도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답장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모르는 척할까, 어떡하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며칠밤을 뒤척였었다.

그 시절 나는 자와 가위를 들고 품행이 단정한 학생을 재단하고 있었다.

결국 모범생 틀에 갇혀 밀어내기를 하였다.

그럼에도 더 이상 선배가 힘들지 않았음 했었다.

'다시는 편지하지 마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백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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