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등불을 밝혀 주옵소서
지혜의 등불을 밝혀 주옵소서
어느덧 싸늘한 찬바람이 교정을 꿰차고 들어앉았다.
3학년 선배들은 고입 시험 막바지 박차를 가하였다.
교무실에 용무가 있어 본관에 들리면 1층은 쉬는 시간임에도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 하나 없었다.
재채기라도 했다간
'누구야' 하며 문이 벌컥 열릴 것만 같았다.
조용조용, 사뿐사뿐, 쥐도 새도 모르게 다녀야 했다.
학교 행사 준비로 바쁘신 미술 선생님을 나 혼자 보조할 때가 가끔 있었다.
반 아이들은 교실에서 자습하고 나는 강당에서 선생님을 도왔다.
선생님은 작업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선배들 얘기를 꺼내셨다.
미경아, 오빠야들한테 시험 잘 보라고는 했니?
네에?
그 오빠야들 있잖아.
아~, 아니요.
시험공부하느라 오빠야들 요즘 무척 힘들 거다.
이럴 때 네가 응원의 말이라도 해주면 힘도 나고 얼마나 좋아.
........
선배들 말만 나오면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러 나는 흐릿한 말로 얼버무리곤 했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 모르는 척하면서도 선생님이 선배이야길 하시면 좋았다.
오빠 동생 하자는 제안에 나의 의사가 선배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모른다.
그 후로 담임선생님도 그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셨고,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미술선생님이 선배들 얘길 하셔서 '선생님들은 다 알고 계시는구나'라고 어림 짐작할 뿐이었다.
초저녁부터 제법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던 날이었다.
교문 밖,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B선배를 보았다.
선배는 어깨를 들썩이며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선배 옆에는 친구들이 어깨를 토닥이며 무리 지어 황급히 지나갔었다.
저기 00 선배 아니가?
무슨 일 있나 봐.
울고 있어.
온갖 추측들이 쏟아졌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멀어져 가는 B선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선배의 뒷모습이 유달리 슬퍼 보였다.
선배들 소식은 귀만 열어 놓으면 어디서든 접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B선배는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는 것,
A선배는 읍내에서 제일가는 고등학교에 합격했다는 얘기가 교실에 파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