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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말고 우산 주세요

트라우마

by 이미경



아침부터 비가 대차게 내렸다.

빗발이 얼마나 굵던지, 바람까지 가세해 땅을 때리자 흙탕물이 타닥타닥 튀어 올랐다.

"우산, 우산, 우산?"

내 바로 위 언니가 하나 남은 우산을 잽싸게 체 갔다.

히잉!

"엄마, 나도 우산"

이거라도 쓰고 가라며 내어주신 것은 할머니 유품, 꽃이 수 놓인 양산이었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내 구멍 난 양말이 질척거렸다.

갑자기 생겨난 수만 개의 실개천을 건너

200여 미터 윗동네에 다다랐을 즈음, 나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똘레똘레 뭉쳐가던 등굣길,

한 언니가 큰소리로 떠드는 말, 나를 부끄럼에 풍덩 절였다.


"야들아, 미경이 함 봐라.

홀딱 다 젖었다.

우산에서 비가 줄줄 샌다야.

희한한 우산 다 본다야"


별 총총 눈 총총이 짤깍 짤깍 쏠렸다.

소곤소곤 수군수군 입 나를 향했다.

내 언니,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그냥 걸었다.

'히잉, 언니야'

그렁그렁 가랑가랑 눈물이 비에 섞여 내렸다.

맨살 찢긴 절벽의 붉은 아우성에 내 여린 울음소리가 묻혔다.

파르라니 떨리는 손, 바람이 숨겨주었다.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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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양산이 없다.

대신 우산은 가지가지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맞춤 우산, 한 번 두 번 세 번 접어 가방에 쏙 우산, 맑고 깨끗해 잘 보여 우산,

너를 위해 준비해 뒀어 오지랖 우산, 갑자기 비가 와서 황급히 산 우산, 친구 강남과 똑같은 우산,

떴다 무지개 우산, 한결같이 수수해 우산, 비 마시면 꽃 피는 우산,...

흠~! 끄덕끄덕.

'세상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해님 방긋 웃는 날에도 나는 우산꽂이에 우산이 꽉 차 있어야지만 마음이 놓인다.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단다.

호우주의보, 강풍주의보가 번뜩번뜩 울린다.

어디 보자.

뒤적뒤적.

'흑! 이걸로는 안 되겠어'


'그 아무리 센 바람이라 해도 절대 부러지지 않는 우산 어디 없나?'

'그 아무리 거친 비라 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우산 어디 없나?'

다다다닥 쓱.

꾸벅!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름신 강림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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