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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Nov 04. 2023

마루야, 산책 가자

마루의 요란한 전입 신고식

홀로 계신 아버지 적적하다고 오빠가 풍산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고 톡방에 올렸다.

2주 후쯤, 나는 사진으로 보기보다는 실물이 너무나 보고파서 

휴일인 남편을 재촉하여 둘째를 등교시키자마자 서둘러 아버지 집으로 달려갔다. 



강아지 마루는 태어난 지 3개월 차 접어들었다 했는데 

현관 옆에 의기소침해 얌전히 앉아있는 폼이 영락없는 우리 집 식구였다. 

아버지만 빼고 우리 집 사람들은 매가리가 없어 보이는데 마루의 첫인상이 그랬다.

"안녕? 반가워! 정말 예쁘구나! 환영해!" 나의 인사말에

마루는 낯가림을 하는 듯 뒤로 슬쩍 뒷걸음질 치더니 슬그머니 마당으로 내려갔다.


나는 바로 부엌에 들어가 점심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남편이 옆에 와서는 

"강아지가 이상하게 생겼다, 눈이 찌부러졌다" 며 마루가 못생긴 강아지인 양 중얼거렸다.

별 볼일 없는 제 얼굴을 가지고도 늘 남의 얼굴 품평회를 여는 사람인지라  

'또 시작이네, 하다 하다 이제 강아지 얼굴까지 생트집을 잡네' 싶어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마루와 빨리 독대할 생각에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급히 몇 숟갈 뜨고서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먼발치에 있던 마루를 불러 간식을 내미니 조심조심 한 발 두발 다가오더니 냄새를 슬쩍 맡아보고는 

이내 뒤돌아서 물러났다. 그러면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먹어보라며 자꾸 간식을 입에 들이밀었더니,

마루는 마지못해 다시 냄새를 맡아보고는 먹을까 말까 망설이며 계속 뜸을 들였다. 

그런데 마루 눈이 이상했다. 

한 방 세게 정통으로 눈을 맞은 복싱 선수처럼 한쪽 눈꺼풀이 축 처져 내려앉은 것이 

눈가로 뭔가가 촉촉하게 얼룩져 보였다. 양쪽 눈을 비교하여 보니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왼쪽 눈은 초롱초롱 맑고 투명한데 오른쪽 눈은 완전히 떠 지지도 않은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식사 중인 아버지에게  

"아버지, 강아지 한쪽 눈이 어디 부딪쳐 멍이 든 것처럼 보여요, 처음부터 저랬어요? 라며 물었다. 

아버지는 강아지 밥을 챙겨 주면서도 그것까지는 모르겠다시며 고개를 갸웃하셨다.

"아무래도 어디 아픈 것 같은데 오빠한테 전화해서 한 번 물어보고 병원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며 

거듭 내 의견을 피력했다.


식사를 마치신 아버지는 내 말이 걸렸는지 마당으로 나가셨다.

잠시 후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병원 가야겠다며 급히 채비를 하셨다. 

마루 눈을 까뒤집어 봤더니 눈동자에 하얗게 백태가 끼어 있다며 허둥지둥하셨다.

갑자기 보쌈당하듯 얼떨결에 차에 태워진 마루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아버지는 겁에 질린 마루를 품에 안고서 "괜찮다, 너 낫게 하려고 병원 가는 거다 " 며 아기 달래듯 하셨다.


남편 차로 읍내 동물병원에 간지 서너 시간 후 아버지와 마루가 돌아왔다.

벌에 쏘였다며 벌침을 뽑고 온 마루는 기운 없이 축 쳐져있던 처음과는 달리 조금 생기를 찾은 듯했다. 

아버지는 "그간 얼마나 아팠겠냐? 내가 벌침이 눈에 보일리 만무하니 눈이 이상한지 알 턱이 있었겠냐, 

미경이 너 아니었음 하마터면 마루 봉사될 뻔했다 아이가" 하시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때마침 우리의 방문으로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마루 눈을 치료했으니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당에는 아버지가 소일거리로 하는 벌통이 2개 있었다. 

날이 따뜻하면 벌이 가득 기어 나와서 웽웽 날아다녔는데 하필이면 마루가 그 벌에 쏘인 것이다. 

그 뒤로 마루는 벌통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전언이 들렸다. 

마당 여기저기를 발발거리며 헤집고 다녀도 벌통은 멀리 피해 다닌다 하였다. 

마루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전입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격이다.



마루는 정말이지 너무나 사랑스럽게 성장했다.

접혀 있던 귀가 쫑긋 서더니 "끼잉 끼잉" 가냘팠던 목소리가 "왁왁 왁왁" 우렁차게 변하였다.  

갈 때마다 쑥 쑥 자라 있더니 어느새 힘은 아버지를 능가하여 우리 집에서 제일 세졌다. 

덩치는 커도 성격이 온순하며 붙임성이 좋아 한 번 보면 돌아서서 자꾸자꾸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아버지는 입이 까탈스럽긴 해도 정량을 지켜 밥을 먹고, 한번 야단친 일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며 

영리하기 그지없다고 우리에게는 한 번도 하지 않던 칭찬을 마루에게는 넘치도록 하신다.

어느덧 아버지를 지키는 든든한 반려견으로서 입지를 굳힌 마루는 

꼬리 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짖어대며 오가는 사람들을 한없이 반긴다.

'소머즈 귀'를 달았는지 마루는 대문 앞에 선 내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쫓아 나와 "멍~" 크게 한 번 짖으며 아는 체를 제일 먼저 한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 손 냄새를 연신 맡아보고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격하게 맞아준다. 

살포시 옆에 와서 몸을 기대어 하얀 털을 내 옷에 다 옮겨 붙이기도 하고, 

머리를 쿵 쿵 떠밀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한 입만 줍소' 애원하듯 침을 뚝 뚝 흘리며, 두 눈을 껌벅거리며 빤히 쳐다볼 때면 

마음이 무장해제되어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다.  



나는 마루를 만나면 꼭 하는 일이 있다.

바깥바람을 세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마루를 산책시키는 일이다. 

항상 드문드문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뵙다 보니 집에는 손 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늘 시간에 쫓기며 쓸고 닦고 할 일이 태산 같아도 마루와 산책하는 일만은 거르지 않는다. 


처음엔 마루는 아버지를 따라 경운기를 타고 산으로 들로 나가서 한두 시간을 마음껏 뛰어놀았다. 

그러다 90을 바라보는 아버지 점점 힘에 부쳐 바깥으로 나가는 횟수가 잦아드니 활동량이 팍 줄어들었다.

집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한창인 마루로서는 갑갑증이 나서 몸이 근질근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루는 내가 일어서 현관 앞으로 얼른거리기만 해도 대문 앞으로 잽싸게 달려 나가서 꼬리를 흔들고 섰다. 

"마루야, 산책 가자" 하면 좋아서 마당을 가로지르며 후다닥 후다닥 뛰는 것이 신바람 가득 찬 아이 같다.

하늘 높이 튀어 오르듯 펄쩍펄쩍 뛰다가도 목줄을 해야지만 대문을 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마루는 

내 앞으로 다가와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빨리 목줄 고리를 채우라는 듯 머리를 쑥 내밀고 가만히 있는다.

"출발" 소리와 함께 나는 대문을 열고 마루를 앞세워 동네 골목골목을 누빈다. 

마루는 가는 곳마다 자취의 방정식을 그리느라 바쁘고, 나는 변화된 풍경에 눈을 움직이느라 바쁘다.



뒷집을 지나 이발소와 담뱃집, 방천을 지나서 두부장수 집, 그리고 안골목에 들어서면 

파젯날 아침 골목길을 달리며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오시라' 외치던 어린 내가 휘리릭 스친다. 

중학교 이후로는 안골목으로 들어가 볼 일이 없었던 나는 

시간의 스펙트럼을 걸어 나가며 종잡을 수 없이 출렁대는 감정의 파동에 기분이 알싸해졌다.


혼자 달렸던 골목길을 마루와 아이들과 함께 섰다. 과거와 현재의 조우의 순간~

마루가 쏟아지는 햇살에 하얀 털을 나부끼며 먼저 달려 나간다. 착착착 시간을 덧입히는 발자국~

뒤를 이어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아이들과 함께 골목길로 쑥 빨려 들어간다. 소곤소곤 소리들의 교감~ 

혼자였던 내가 시간을 타고서 넷이 되어 추억의 골목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너울거리는 공간~


마루야,

너와 함께 하는 산책은 언제나 언제나 즐겁고 멋들어져! 

우리 언제 언제 언제까지나 오늘같이 오늘처럼 산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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