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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Jan 29. 2024

생일날에 사무치게 그리운 당신

엄마, 사랑해요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의 생일을


겨울에 태어난 그 아이는 눈처럼 하얗고 맑은 피부를 갖고 태어났었다.

꼬질꼬질한 산골에 어울리지 않던 그 아이의 피부는 

들로 산으로 나가자 

햇빛의 생채기로 이내 흑임자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농부의 딸 아니랄까 봐, 뽀얀 피부에 생긴 까만 주근깨는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세월이 흘러 함박눈이 내리던 3월에 그녀가 첫아이를 낳았다.

누구는 달나라에 갔다 오는 꿈을 꾸고 일어나니 아기가 옆에 있었다면서 토끼처럼 방방 뛰어다니는데

그녀는 구부정한 허리로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특이체질이었는지 무통분만 주삿바늘이 그녀의 얇은 피부에 시퍼런 멍자국을 남기며 더없는 고통을 가했다.

허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해 누웠다 일어날라치면 

누가 앞에서 팔을 잡아당겨 끌어주든지,

아니면 혼자서 통나무 같은 뻣뻣한 몸을 비비적대어 옆으로 세웠다가, 

두 손으로 바닥을 차근차근 짚어가며 안간힘을 쏟아 서서히 일으켜 세웠다. 


 그녀도 갓 태어난 아기도 낯설고 어색했던 만남 일주일 후 퇴원을 하였다.

시댁 쪽 어르신 한 분이 전화를 하였다.

그녀가 전화를 받자 하는 첫마디가

"네 시어른들 딸아이 낳아서 섭섭한 것 같더라

 제왕절개는 3번까지는 된다카더라

아들 못 낳으면 바깥에서 낳아 온다, 아나?

다음번에는 꼭 아들 낳아라"였다.


그녀는 화장실로 달려가 입을 틀어막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건넛방에는 그녀의 시부모님들이 계셨기에.........



보드라운 아기의 새근새근 숨소리에 녹아든 그녀는 번쩍 엄마 생각이 났다.

오빠를 낳고 내리 딸을 3명이나 낳았으니 엄마의 시집살이는 고달프고 고달팠다.

엄마는 줄곧 그녀에게 시집살이 얘기를 하셨다.

그녀를 낳고 아침밥을 해 먹었다 했으니,

그 추운 날, 그 얼음장 같은 날에 

딸 낳은 죄인이 되어 

몸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아침밥을 짓었다 하였다.

죄인으로 태어난 그녀가 딸을 낳았다 하여 죄인이라 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송곳 같은 말을 못 뱉어내고 몸속에 쌓아두다 

그녀가 또다시 수술대에 올랐었다.

수술 날짜를 잡아 두고 그녀가 한 것은 정리였다.

하다 만 일은 마무리를 짓고, 아이들이 볼 수 있게 생활의 열쇠를 일기장에 기록해 두었다. 

유연성 없던 지난날의 행동은 사과를 하고 함께 여서 고맙다는 감사인사를 보냈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일이 쉽지 않음이 뇌리에 박혀 내일이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쳤지만,

작은 언니들이랑만 일상을 공유하며 하루하루를 지극히 평범하고 소중하게 써 내려갔다.

수술 날이 임박해 오자 둘째 언니의 알림으로 놀란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그녀를 위한 기도를 하였고,

언니들의 병실 지킴 덕분으로 그녀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누렸다.


퇴원 후 며칠이 지나 시댁 식구들 아무도 모르는, 관심을 두지 않는 그녀의 생일날이 되었다.

그녀의 생일 다음날이 시조부님 기일이었다. 

기막힌 우연들은 언제나 그녀를 시험에 들게 하였다.

결혼 후 첫 해 단 한번 이후로는 시댁에서는 

홀로 생신상, 제사상 차리는 며느리는 채근하여도 그녀도 생일이 있다는 것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 그릇은 혼자서 넓힌다고 넓혀지는 것이 아니었다.

늘 누구 생일이냐, 누구 제삿날이며 자신의 생일조차도 모른다며 기억하기를 거부하는 남편에게

20여 년을 꾹꾹 눌러 참아온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가족이 이런 것이냐며 세상만사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한바탕 크게 소리를 질러 내보낸 후 기대도 바람도 비워낸 평온한 일상을 맞이하였었다. 

마음씀의 거리 두기를 시작한 후 맞은 그해의 그날은 겸허하고 평화로웠다.


 

그녀의 아이들만 기억하는 생일날 아침에 그녀의 엄마가 전화를 하였다.

"몸은 어떠냐?

 오늘이 뭔 날인지 아냐?

 미역국은 먹었냐?"며 당신 몸도 성치 않으면서, 당신을 닮은 삶을 사는 딸 걱정을 하염없이 쏟아내셨다.

  "알지, 그럼

   미역국은 엄마가 먹어야지,

   이 추운 날에 나 낳느라고 정말 고생하였소"

6남매를 낳은 달이 다가오면 삭신이 쑤셔온다는 엄마의 말이 그녀의 명치에 얹혀 있었다. 

그녀도 수화기 너머의 엄마도 흐르는 눈물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생일이 뭐라고, 

그날 고향집에 있으면 미역국에 팥 넣은 찰밥 한 그릇 먹는 게 다였던 

그녀에게 생일은 그저 그렇고 그런 날이었다.

그녀의 생일날에 엄마가 전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들 생일, 친손주 생일 챙긴다고 딸들 생일은 까맣게 잊으신 줄 알았더니........

말하지 않는 마음은 알 길이 없다.



이 세상과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엄마를 마주하던 날, 

귀를 비켜가고 눈에서 멀어지는 그 모든 것이 공허하고 낯설어 '이건 꿈이야, 꿈일 뿐이야'라며 

빨리 꿈에서 깨어나려 손톱날을 창백한 손등에 깊숙이 꽂아 넣어 빨간 초승달과 그믐달을 수없이 그렸다.   

고운 옷을 입고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계신 엄마에게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낮추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이제 더 이상 잡아볼 수 없는 엄마의 손,  

모질고 험난했던 숱한 세월에 부대꼈던 엄마의 손을 꼭 부여잡고 그녀의 체온을 옮겨 실었다.

그리고 "엄마,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라며 뜨거운 눈물을 뚝 뚝 떨구며 작별을 고했다.


생일날이 되면 그녀는 눈물 삼킨 잔상들의 파도에 휩쓸려 망망대해에 표류한다. 

묻어 두었던 그날의 증언들이 불쑥 튀어 올라,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에 얽매여 애절한 그리움에 잠식된다.

올릴 없는 엄마의 전화가 귓가에 소리도 없이 맴돌며 자꾸 가슴팍을 윙윙 쳐댄다.


                시린 날에 태어난 그녀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이름

                애증의 고백을 하던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힘주어 끌어당겨 따스한 손길로 화답했던 당신 

                다음 주에도 또 오겠다며 병실문을 나서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엷은 미소를 띄워 보내던 당신 

                엄마랑 둘이서 함께 한 마지막 날의 생생한 조각들을 영원토록 기억하고파


                                                    "엄마, 사랑해요"

                  Mom,........                                                                                      Rememb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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