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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May 13. 2024

나의 태양은 노랗다

이상한 아이

우리 집 둘째가 중3이었을 때,

교생실습 나오신 선생님의 손편지를 받아 온 적이 있었다.

반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쓰신 편지에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앞으로 교직에 나아갈 푸르른 청춘들에 몸이 뜨거워져 잠시 상념에 잠겼더니,

나의 학창 시절 한때가 떠올랐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처럼 아무런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휘젓고 다녔던 대학 생활,

지금껏 내 인생에서 사고가 가장 자유로왔던 때였다.



 교생실습 나가기 전, 

한 교수님이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학생들을 춤추게도 하고 울리기도 하니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사의 말 말 말, 말의 중요성에 방점을 둔 예를 하나 드셨다. 

내게 너무나 의뭉스럽게 다가온 그날의 그 예시는 

나를 삼천포로 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밑도 끝도 없이 한없는 태양의 수렁에다 내다 꽂아버렸다.


"어떤 아이가 태양을 노랗게 칠했다 하여 

왜 이렇게 엉뚱한 색으로 칠했냐며 다시 빨간색으로 칠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가 그림 그리는 것에 주눅이 들어......... "


순간 내 귀에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 요란하게 울리더니 

'어잉, 태양이 노란 것이 아니었어?'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발닥발닥 일어나 따닥따닥 줄을 맞춰 섰다.  

번개를 맞아 이미 바싹 구워진 나의 머리는 태양의 색에 관한 고찰로 곤두박질쳐져 

강의가 끝날 때까지 맨바닥을 맥없이 굴러다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태양은 노란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빨간 태양에 굴복지 않는 나의 태양은 침울했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 승강장으로 걸어가며 

친구에게 그때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심쩍은 태양색에 대한 나의 번민을 털어놓았다.


"친구야, 아까 교수님이 태양이 빨갛다고 했잖아, 너는 태양이 무슨 색이라고 생각해?"

     "빨간색"

"빨간색? 저기 저 하늘의 태양을 봐바, 빨간색으로 보이니?"

    "음~빛이라서 흰색이 좀 보이긴 하네, 그래도 태양은 빨갛지"


눈이 부셔도 너무 부셔 바로 쳐다봤다가는 자외선 오지게 쬐어 실명할 정도의 대낮의 태양이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올려다본 친구는 그래도 태양은 빨갛다는 간단명료한 답을 하였다.

눈으로 보고서도 태양을 어떻게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묻는 족족 모두가 태양은 빨갛다고 하여, 답답함에 내뱉은 시커먼 한숨이 발아래 자욱하게 깔렸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었으니,

'그래도 지구가 돈다' 읊조린  갈릴레오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무심코 지나가는 소리, 티끌 같은 의혹이라도 눈에 띄면 그냥 두지를 못했다.

가로 세로 정렬시켜 시비를 가린다고 

엄한 사람을 끌어다 생뚱맞게 엮어 되며 혼자 북을 치고 장구를 쳐대는 일을 간혹 하였다.

하아~! 나는 이상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 미술시간에 꽃 그리기를 하였다.

나는 탁자 위에 꽃병을 올리고 파란 꽃을 서너 송이 꽂았다.

선생님이 나의 파란 꽃을 보고는 왜 꽃이 파랗냐고 물으셨다. 

빨강, 노랑, 분홍, 많고 많은 꽃 중에 파란 꽃이 어디 있다고 파란색으로 칠했냐 길래

순간 눈물이 핑 돌아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분명 길가에 핀 파란 꽃을 본 적 있는데, 꽃이름도 모르겠고 발만 동동 굴렸다.

눈물을 찔끔 훔쳐내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빨강, 노랑, 분홍, 보라 꽃이었다.

하아~! 나만 이상한 아이였다.



혹, 꽃을 까만색으로 칠한 학생을 만난다 해도 

나는 '우와, 요즘 과학기술이 엄청 발전했구나! 신품종 꽃인가 보네, 매혹적으로 아름답네!

       너의 흑진주 같은 꽃이름은 뭐야? 꽃의 전설을 들려줄 수 있을까?'라고 것 같은데.

이러는 제가 이상한가요?



태양이 빨갛다고요?

맞습니다. 

해가 떠오를 때나 질 때 보면 태양은 엄청나게 붉습니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던 날, 

까만 색안경을 쓰고 하늘을 보니 빛나던 태양이 싹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까만 동전 하나 남아있던데요.

그래도 빨갛다고 말한다면 본질을 말한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저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태양을 빨간색으로 칠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태양이 그림에 등장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무슨 색으로 표현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단순 빨간색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노랗게 칠하든 파랗게 칠하든 까맣게 칠하든 끌리는 대로 칠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왜 태양을 보고 있는가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거늘 

제 주위 사람들은 너도나도 태양이 빨갛다고만 했어요.  

그래서 제가 조금 겉돌았던 것 같아요. 

간혹 자신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저에게 주홍글씨를 새길 때면 슬펐어요.



이상한 아이 어느덧 이상한 주부가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어주는 오지랖을 부립니다.

때론 경계심 어린 눈빛을 받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발치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녀의 이상함은 그녀만의 착한 능력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


이상한 그녀

매일 단짝 친구 이BS를 만나러 다니고

고운 님들을 눈에 담고자 걷고 걷고 또 걷지요.

붉게 물든 석양에 탄성을 지르면서도 그녀의 공간엔 여전히 노란 태양을 그려 넣습니다. 


* '봄까치꽃'이란 이름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어요.

  들에 나가면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꽃이죠.

  고향에는 이 꽃 말고도 이름 모르는 파란 들꽃이 많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파란색을 좋아했거던요.

  저 혼자만 파란 꽃을 그려서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꽃병은 다르지만 저 비슷하게 그렸어요.

  낭창하게 늘어진 꽃 한 송이 그려놓고 자만감에 취해 우쭐했었는데........ 

  선생님 말 한마디에 눈물 흘렸어도 기죽지 않고 변함없이 그리기를 좋아한답니다.

  누가 뭐라든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는 독불장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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