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동체 = 나의 살던 고향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산골짜기 깊은 동네 일찍 찾아든 해거름으로 어둑살이 끼기 시작할 때쯤,
나는 뭔 바람이 들었는지 양철 대문을 배시시 열고 골목을 나서서는,
방천에서 불어오는 센바람에 의지한 체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는 낙엽 따라 안골목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활짝 열려 있는 대문 너머에 소죽 솥에 불을 때고 있는 할아버지의 거친 손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빼꼼히 들여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지나쳐가려는 나를 보고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야야, 여 와서 놀아라, 아그들 여 다 모여 있다"
가제트 팔을 뻗어 동무 찾아 힐끔거리는 촐랑촐랑 조랑발을 쭉 끌어당겼다.
'이 집은 처음인데'
할아버지의 반가운 부름에 나는 낯 선 집 대문을 냉큼 들어서 곧장 사랑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여 한 명 더 놀러 왔다, 문 열어주라"
할아버지의 친절한 목소리가 방문을 노크했다.
축담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신발 무더기, 그 한 옆에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모아 두고
친구신발 다치지 않게 까치발로 디디며 조심조심 건너 허리춤보다 높은 문턱을 어렵사리 올랐다.
"어서 온나, 어서 와라"
동네 언니들 내 손을 잡아끌어 아랫목에 앉혀 주었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붐볐던 골목길이
지나다니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고 휑하길래 어딜 갔나 했더니,
동네 아이들 할아버지 사랑방에 모여 하하 호호 이빨을 부대끼며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강에서 신나게 얼음을 지치다 손발이 빨갛게 얼어붙고 낡은 옷가지가 축축해지자
오들오들 떠는 몸을 녹이러, 젖은 옷가지를 말리려
열려있는 따뜻한 사랑방, 아무 방을 찾아 기어든 것이었다.
누구 집, 누구 동생이라는 간단한 소개를 아무 언니가 하고 나서 야자타임이 시작되었다.
띠동갑 나이여도 반말을 주고받았으며, 아무도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하지 않았다.
사랑방에 모인 아이들, 우리 모두는 평등했다.
"이거 먹고 놀아라"
할머니 고구마를 삶아 바구니 한가득 사랑방으로 들여보내주셨다.
올망졸망 고구마 손에 잡히는 대로 저마다 하나씩 들고서
입을 볼록볼록 오므리며 저녁때가 다 되어가건만 사랑방을 떠날 줄을 몰랐다.
"여서 뭐 하고 있노? 밥 무로 가자, 얼른 나 온나"
동네를 뒤져 찾아온 제 식구들의 부름에 하나 둘 저녁 먹으러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도 눈치를 긁고 집에 돌아와서는 밥상머리에서 오늘 처음 간 사랑방에서의 일들을 나지막이 고했다.
정월 대보름날 갖은 묵나물에 오곡밥을 하여
"온나, 온나, 여 와서 밥 무라"
지나가는 아무 아이에게 숟가락을 덥석 쥐어 주고
숟가락을 받아 든 아무 아이, 제집인양 오물오물 날름날름 먹었습니다.
딸부잣집 막내아들 마을 회관 앞에 홀로 남겨 두고 산으로 들로 농사일을 하러 간 이웃,
우리 엄마 그 귀한 아들 집으로 데려와 먹이고 씻겼습니다.
동네 모두가 공동 육아에 참여하였습니다.
옆집 할아버지 자리에 누워 계실 때
우리 엄마 녹두죽을 쑤어 날랐습니다.
동네 모두가 어른을 섬겼습니다.
마을 공동 샘터에 둘러앉아
빨래를 하고,
물을 긷고,
멱을 감고,
샘터에 모인 우리는 한 가족이었습니다.
담벼락이 있으나마나, 대문이 있으나마나
'어서 온나' 손짓으로 정을 베풀고, 하하 호호 깨방정을 떨며,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니며,
맘대로 이집저집을 들락날락하였습니다.
높은 음자리 웃음소리로 지축을 울리며 놀다가도
솔가지, 숯, 붉은 고추 매단 금줄이 쳐진 집 앞에서는 숨을 멈추고 살금살금 비켜가고
희희낙락 길을 가다가도 꽃가마 지나가면 멈춰 서서 눈물로 배웅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오는 날부터 저 세상으로 가는 날까지
우리 동네 사람들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가진 것은 적었지만 나눔에는 풍족하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소박했지만 낭만이 깊은 곳이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고된 노동 뒤에 대추향내 가득 품은 달콤한 밤이 찾아들었습니다.
네모상자 위에 네모상자 하늘 높이 층층이 쌓아
위를 재고 아래를 재고, 등을 지고 척을 지고 사는 가파른 오늘
고향에서 놀던 때가 자꾸만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