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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May 20. 2024

상 탄 날의 초상

욕심 내는 엄마와 사심 없는 아들

"누구 집에 갔더니 개근상도 상이라고, 자랑한다고, 테레비 위 한복판 벽에다 떡하니 붙여놨더라.

 나는 마, 너거 타 온 상장으로 온 방 도배를 다 하고도 남는데"라고는 하셨지만 

엄마는 우리가 받아 온 상장을 한 번 힐끔 쳐다만 봤을 뿐 덧붙이는 말씀은 없었셨다.


엄마가 소천하시고 첫 기일에 막내 이모랑 엄마를 추억하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모는 "내가 예전에 여기 놀러 와가, 미경이 너 대학 성적표를 본 적 있었는데 너 참 공부 잘했더라" 하셨다.

  "이모가 어떻게 내 성적표를 봤어요" 물으니 

엄마가 서랍에 넣어둔 성적표를 꺼내 보여주더라고 해서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났었다.


상을 받으면 

우리 집 첫째는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았다고 뿌듯해하며 자랑스럽게 상장을 내밀었다.

둘째는 "누구도 참 잘했는데" 하면서 자신이 받은 것을 쑥스러워하며 나의 작업탁자에 조용히 올려놓고 갔다.

한 배에서 나고도 상장을 대하는 태도는 어찌 이리 다른지........ 



집에 사탕이 쌓여갔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동기부여 한다며 주신 사탕, 웬만해선 아이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였다.

군것질을 잘하지 않던 우리 집 아이들, 그것을 받아 와서는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탕 받으면 사탕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나눠 주라고 특훈을 내렸다.


네게 넘치는 물건은 쓸 만큼만 남기고 나누어라

네가 집에 가만히 두는 물건이 생기면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라

네가 할 수 있는 선한 행동을 기꺼운 맘으로 베풀어라 

나누고 베풀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밥상머리에서 말하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초6 아들, 

책가방에서 상장을 쓱 꺼내더니 아무 말 않고 탁자 위에 두고 갔다.

과학 자유탐구 대회 우수상이었다.

기쁨의 환호성을 울림과 동시에 달랑 상장만 꺼내 놓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을 미루어 보건대 뭔가 빠진 것 같은 찝찝함에 과묵한 아들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직까지 욕심을 끊어내지 못한 나, 

염불 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내가 취한 행동은 물질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심질문이었다.

"아들, 이 종이 한 장뿐이니?"

"요즘 학교 사정이 좋지 않은 가봐" 

"전에는 별것 아닌 것에도 문상을 마구 뿌리더니........."

부상을 기대하며 물었다.


  "어~, 그것? 있었지"

  "선생님이 상품 몇 가지 중에 순위대로 고르라 하여 블루투스 선택했지"

  "엄마가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잖아"

  "그래서, 우리 반 누구한테 줬더니 정말 좋아하더라"

우리 아들,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했기에 아주 만족스러운 듯 씩씩하게 답했다.


'짝짝짝', 음, 내가 그랬지, 그랬다, 그랬고말고.

"아들, 엄마 말을 잘 기억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실천까지 다해주고, 정말 장하구나!"


일단 칭찬으로 도배하고,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고 실천해 주는 아들에게 

아래와 같이 잔망스러운 말을 덧붙였다.


"아들, 그런데 말이다" 

"다음에는 상장과 함께 딸려오는 부상품도 구경시켜 주고 나눔을 결정하면 좋겠다"

"우리가 블루투스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없어서 란다"

"엄마에게 세탁건조기가 그런 경우지"

"아빠 수입 내에서 살아가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을 뿐이란다"

"누나에게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 네게도 필요할 수도 있을 텐데"

"다음부턴 말이야, 상 탄 기쁨을 가족들과 충분히 만끽한 후에 나누고 베풀면 좋겠어"


 "그래도 네가 친구의 기뻐하는 모습에 덩달아 좋았다고 하니 그것으로 되었다"



욕심 내는 엄마와 사심 없는 아들,

조급한 나와 느긋한 아들의 대화는 노 젓는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다.

진정 내가 하고픈 말이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꾸 삼천포로 걸어간다.


욕심 내는 엄마, 

사심 없는 아들 상 탄 날에 모양 빠졌네요.

갈 길이 멀어요. 

욕심 내려놓는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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