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피어나는 기적

나의 명예퇴직 이야기

1. 삶에서 피어나는 기적

—나의 명예퇴직 이야기—

경북 왜관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1~2학년 무렵, 매서운 겨울 새벽에도 아버지를 따라 인근 작오산 약수터에서 찬물로 목욕재계하곤 했다. 그때의 수행 기질은 성인이 되면서 암시법, 초월명상, 위빠사나, 생활참선, 국선도, 금강경 독송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로 22년째 근무하던 시절, 문득 ‘이제 남은 생은 더 고귀한 가치를 위해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깊이 일어났다. 그 시절인연이 나를 이끌었는지, 나는 기어이 명예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마흔여덟의 나이에.

마침 교직 20년이 지나 연금을 받을 수 있었기에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했다. 나는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며 수행의 길을 더 깊이 닦아보고자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예퇴직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했다.

“교직을 그만두고 무료급식소에서 수행과 봉사에 전념하고 싶소.”

이 말을 전했을 때, 아내도 당시 고3이던 아들도 도무지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은 물론 친지, 지인, 함께 수행하던 도반들까지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만류했다.

그 시기 나는 마치 공황 상태에 빠진 듯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길을 가겠다는데, 그 길을 가로막는 온갖 여건과 반대의 이유를 들을 때마다 ‘내가 지은 업이 참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생각도 헤아릴 수 있었다. 연금이 있다지만, 당시 교직은 누구나 꿈꾸는 안정적 직업의 1순위였다. 수행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굳이 버릴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단 한 사람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고군분투했고, 급기야 아내는 이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100일 철야기도에 들어갔다. 다행히 아내는 기도 중에 남편이 학교 밖에서 성심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교직’이라는 단단한 집착을 내려놓게 되었다. 마침내 내 명예퇴직 결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주변 정리를 모두 마치고, 17년이나 남은 교직을 끝내고자 명예퇴직원을 제출했다. 그러나 진짜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대부분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는 정년 1~2년을 앞둔 분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무려 17년이 남아 있었으니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그럼에도 ‘이제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겠지’ 하고 막연히 바라며 학교를 나가지 않던 어느 날, 학교에서 긴급히 전화가 왔다. 교장·교감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에 명예퇴임 신청자가 많아 미리 확인해 보니, 전국적으로 신청자가 급증해 기준을 ‘남은 교직 기간 10년 미만’으로 정했답니다. 우리 학교 신청자 5명 중 4명은 기준을 충족했으나, 김 선생님은 17년이 남아 있어서 불가하다는 판정입니다. 내일부터 정상 출근해 주세요.”

그날, 그해 가장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명예퇴직원을 냈건만 ‘자격 미달’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렇게 끝내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3일 후면 최종 발표가 있었다.

나는 그 3일을 온전히 기도로 채우기로 했다.

“만약 부처님이 계시다면, 이 길을 못 가게 하시진 않을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며 나는 마음속 불안을 지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초발심자경문의 한 구절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삼일수심 천재보(三日修心 千載寶) — 진실하게 마음을 닦은 사흘은 천 년의 보배요

백년탐물 일조진(百年貪物 一朝塵) — 백 년의 탐내던 재물은 하루아침 먼지와 같나니

단 3일이었지만, 나는 오직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심사 기준이 이미 ‘10년 미만’으로 확정된 상황이었다. 누구나 보아도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어쩌면 기도란 너무도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음 하나로 기도했다.

‘만약 나의 뜻과 마음을 모두 아시는 분이 대통령이라면, 나 하나 명퇴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안된다’는 생각이야말로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뿌리일 것이다. 나는 그 한 생각을 철저히 버리고, 이 일이 참으로 진실하고 올바른 일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주변에는 이미 ‘명예퇴직 한다’고 소문이 다 퍼졌는데, 만약 안 된다면 얼마나 민망하고 기가 찰 일인가.

그리고 드디어 발표날 아침

여리박빙, 살얼음을 밟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믿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내 이름이 명예퇴직자 명단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아마 가장 놀란 이는 교장·교감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안 된다고 확인까지 했고, 후임자 모집도 4명만 받아 진행했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으니 말이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나는 이 일을 단순한 ‘행운’이라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깊이 실감했다. 우리에게 닥치는 난제란 어쩌면 우리 마음속 ‘선입견’이 만들어낸 형상일지도 모른다. ‘안 된다’는 생각을 소멸시키고 나니, 본래 이미 갖추어져 있던 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운허 큰스님(춘원 이광수의 8촌)의 법문에서 소개되는 백성욱 박사의 일화는 내 마음에 더욱 확신을 주었다.

“모난 그릇이라는 선입견만 없어지면, 그 가운데 있는 모난 허공도 사라지는 법입니다. 우리는 잠재의식 속 선입견이 시키는 대로 살아갑니다. 솥뚜껑은 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백성욱 박사는 그 뚜껑을 그릇 안에 넣어 보였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경험한 일들은 많았지만, 이 명예퇴직의 경험은 내 삶을 일깨우는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다. 어쩌면 남은 생을 밝고 의미 있게 이끌어가기 위해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이 선물 같은 경험을 품고, 내 삶이 소풍처럼 아름답게 완성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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