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 찾아오는 복, 경주에서 다시 깨어난 인연
『논어(論語)』 학이(學而) 편 첫머리에는 오래도록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문장이 있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는 이 한 구절에 삶의 본질을 담아 두었다.
학문의 기쁨도, 인생의 기쁨도, 결국 사람과의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이다. 나는 그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이렇게 덧붙이고 싶어진다.
“먼 곳에서 오는 벗의 발걸음은 조용히 말한다. ‘그대는 누군가의 마음에 참으로 귀한 사람입니다.’”
<기억 속의 경주, 시간의 결을 지나 다시 피어나다>
나의 경주는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의 바람결 속에서 시작되었다.
불국사 앞마당의 흙냄새,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지던 돌기둥의 촉감 그리고 나를 위한 선물로 구입한 붉은빛을 머금은 작은 석가탑 모형은 한동안 내 책상 위에서 어린 마음을 매만져 주던 벗 같은 존재였다.
세월이 흐르고 성인이 되어 약혼식을 올린 뒤, 그 기쁨을 마음에 새기러 다시 찾은 곳도 경주였다.
그리고 어느 해, 서울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교직원 불자연합회 연수로 석굴암 안에서 사흘 밤 연속 저녁 예불을 올리는, 지금 돌이켜도 믿기 어려운 귀한 시간을 맞기도 했다.
본존불의 부드러운 윤곽 뒤에서 조용히 서 계시던 관세음보살—
그 머리 위에 아미타불을 이고 모신 모습 앞에서 ‘어찌 스승을 이토록 깊이 품을 수 있을까’ 하는 경외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상대사도 백화도량 발원문에 이러한 관세음보살의 정신을 담고자 의상대사 스스로 관세음보살을 자기 머리 위에 모시고자 발원하는데,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밝은 스승님을 모시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깨닫곤 했다.
그때부터 경주는 내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깊이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새천년의 경주, 다시 깨어난 도시의 숨결>
오랜만에 찾은 경주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도시처럼 고요한 품격과 새로움이 동시에 배어 있었다. 예전에도 깨끗하다는 기억이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도시 전체가 한층 더 정제되고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경주를 여러 번 찾았음에도, 이번처럼 하루라는 시간을 통째로 걷기에 바친 적은 없었다. 천천히 걸으며 낙엽이 바람에 흐르는 결, 오래된 돌담에 스며든 세월의 색, 가을이 내는 숨소리까지 모두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다가왔다.
저녁에는 친구의 안내로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마주했다. 물결 위에서 흔들리던 누각의 불빛은 마치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 놓은 듯했고, 그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세월의 속도가 잠시 멈춘 것만 같았다.
다음 날 걸었던 <새천년의 숲> 역시 내가 알지 못하던 경주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나무 사이를 흐르는 빛이 마음에 깊게 스며드는 길이었다.
벗의 삶을 바라보며 배우는 것들, 1년 전보다 더 노력하는 친구의 사업—참신한 기획의 탁구장, 무인세탁기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 그의 삶은 늘 변화와 진심을 품고 있었다. 자기 자리에서 늘 새로움을 모색하며, 벗이 오면 기꺼이 마음을 열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
나는 그의 삶을 볼 때마다 자연스레 존경의 마음이 일렁인다. 공자의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그는 이미 그 문장을 살아내고 있었다.
벗에게 보내는 한 마디!
이번 경주 여행의 마지막 순간,
내 마음에는 한 문장만이 오래 머물렀다.
“좋은 벗과 걷는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는 인생의 선물이다.”
고맙네, 친구.
그리고 불국사 바로 아랫동네에서 살고 있는 자네의 가족 모두에게도,
언제가 그렇듯 따뜻함과 건강과 기쁨이 늘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