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따뜻하던 날, 발을 헛디뎌 흐드러진 겹벚꽃 나무 밑에서 넘어졌다.
괜찮냐고 물어오던 동료의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괜찮아, 넘어진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하고 본 내 손바닥은 껍질이 까져 선홍빛 피가 고이고 있었다.
동료의 거듭된 걱정에도 "괜찮아", "나는 원래 잘 넘어져", "별 거 아니야"라며 동료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문득 너무 쓰라려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는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나는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여린 사람이야, 나한테 만큼은 센 척하지 않아도 돼."
그럴 때마다 자존심을 세우며 난 강하고 씩씩한 사람이라고 반박하며 스스로 그렇게 되뇌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이 정도 나이를 먹으면 뭐든지 아무렇지 않은 거라고.
왜 하필 넘어진 날 저 말이 생각이 났는지,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깨달은 건
오늘 나는 넘어졌고, 매우 아팠고,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나를 보고 우리 할머니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참을성이 많다고 했고,
심지어 맹장이 터질 때까지 참아 의사 선생님도 꽤나 아팠을 텐데 왜 이제야 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 보니 나는 언제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고,
대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을 겹벚꽃 나무 밑에서 넘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나에게 딱 한 가지만을 바라셨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크는 것.
바둑, 수학, 컴퓨터 등 다재다능했던 오빠와 달리 내가 잘하는 건 맨발로 동네를 뛰어 나니는 것뿐이었다.
그런 오빠에게 기대가 컸던 부모님은 자연스레 나에겐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하지만 오빠와 나의 성적이 중학교 때 엇갈리기 시작한 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엄마와 아빠는 은근히 나에게 좋은 성적을 바랐고, 오빠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줄곧 했다.
그런 말을 들은 나는 자연스레 나까지 부모님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둘째지만 장녀 같은 삶.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나라도 잘해야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알잖아 우리 집은 오빠가 문제인 거"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오빠가 문제이니, 나라도 잘해야 돼 (그러니 넌 힘들 겨를이 없어)"
"나는 문제를 일으키면 안 돼 (감정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달려)"라는 생각을 가진 성인이 되었다.
그렇게 큰 아이는 스스로에게 절대 솔직해질 수 없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취업에 연이어 실패할 때도, 남자친구가 서운하게 할 때도, 회사에서 비상식적인 일어날 때도,
항상 "괜찮아, 별 일 아니지 뭐", "나만 이렇게 힘든 거 아냐,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겁은 많지만 그래도 해야 될 일은 어려운 일이라도 묵묵히 해낸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해내는 중간중간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힘들 때는 왠지 모를 눈물이 나기도 하며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 일 없었던 척 다시 하루 종일 일하고 목표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런 나의 면모를 보면 씩씩하지만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정말로 강했다면 집에 와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을 것이고,
복잡한 생각들로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눈물, 그리고 생각 뒤에 가려진 내 감정들을 "괜찮다며"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일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의 솔직한 마음을 알기 두려웠던 게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니 내가 외친 수많은 "괜찮아"는 상대방이 아닌 나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음을.
솔직한 감정이 두려워 나에게조차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입막음해 버렸던 것임을.
많은 책을 읽고도 나는 내가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감정을 잘 돌아보는 편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그저 자기감정 하나조차 대면할 수 없는 비겁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마음이 여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인 것은 괜찮다.
하지만 감정을 회피하고 무관심한 것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행위이기에 앞으로는 함부로 괜찮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감정에 무관심했던 것을 깨달은 나는 이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겹벚꽃 나무 밑에서 넘어졌을 때 사실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