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보고

by JW

폭삭 속았수다를 보고 울지 않은 날보다 운 날들이 훨씬 많았다.

나는 애를 낳은 적도 없고, 집이 금명이네보다 어렵지도 않은데, 끊임없이 눈물이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회사에서 잔뜩 치이고 집에 갔을 때 깨달았다,

내가 폭삭 속았수다를 보고 하염없이 울던 이유는 나는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그런 금명이가 눈물 날 정도로 부러워서였다.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은 금명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걷기 전, 관식이 건넨 한 마디였다.

“금명아, 아빠 항상 여기 있어. 수틀리면 빠꾸. 아빠한테 냅다 뛰어와.”


관식은 금명이에게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나, 첫 운동회 때, 수능 볼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든든한 집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근래 나는 집에 있어도 자꾸만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가족과 있어도 우리 집이 아닌 집. 불편한 집. 나가고 싶은 집.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때 나에 대한 기대가 단 한 톨도 없었다.

아무래도 오빠가 나보다 훨씬 공부도 잘하고 얌전하다 보니 나에 대한 기대는 단 하나였다, “건강하고 행복만 할 것“

하지만 그 기대가 풍선처럼 커지는 것은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오빠와 나의 성적은 엇갈렸고, 부모님은 하염없이 삶을 헤매는 오빠에 대한 기대를 접고 은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은 나에게 오빠 때문에 커져버린 걱정과 우려, 그리고 칭찬을 가미한 압박을 선물해 주셨다.

어린 마음에 그저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고, 받아본 적 없는 칭찬에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저 “사고 치는 애”, “다치는 애”, “물건 잘 망가뜨리는 애”에서 “착한 애”, “성실한 애”, “기특한 애”가 되는 건 숫자 몇 개면 가능했다.


그런 나를 보고 언제나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 하셨던 부모님. 나는 그 말을 찰떡 같이 믿었더랬다.


그렇게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순간, 부모님은 바로 부모님 방식의 “지지”를 해주셨다.

그 과는 취업이 안돼, 그건 취미로 해도 돼, 너가 그걸 언제까지 좋아할 것 같아? 너가 거기 가서 뭐 할 건데.

분명 걱정 섞인 말들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부모의 지지는 선택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데 충분했다.

부모의 지지는 어른들이 설정해 놓은 “좋은“ 길 까지라는 것을.


부모님과 타협을 해 좋은 대학의 원하는 과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방식의 “지지”는 끝나지 않았다.

의대를 갔어야지, 그러게 내가 지원하라고 할 때 왜 안 했니, 너는 내 말대로만 하면 되는데, 의대 재수 준비해 봐.


원하는 스타트업에 취업했을 때에도 내가 받은 건 축하보다 질책에 가까웠다.

거기 가서 얼마나 번다고, 그 회사가 정말로 성공할 것 같아? 대기업을 가야지. 너 분명 말 안 들어서 후회할 날이 올 거다

그렇게 가벼운 우울증으로 퇴사하는 날 엄마는 날 무너지게 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러게 애초에 그런 회사를 왜 들어가니? 넌 내 말만 들으면 되는데


그렇게 원하시는 대기업을 취업해, 눈물을 흘리고 화병이 나 가슴 통증이 와도 결론은 “그냥 다녀”였다.


그리고 금명이를 보고 알게 된 건,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한 번도 돌아갈 기회를 주지 않았고,

수많은 “그냥 다녀” 속 내포된 뜻은 ”우린 빠꾸하는 널 받아줄 수 없으니 우리가 정해놓은 길을 앞만 보고 걸어라“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엄마와 금명이 결혼식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엄마, 나는 금명이가 언제든 빠꾸하라고 말해주는 부모가 있는 게 부러웠어.”

그리고 엄마는 답했다.

“우리는 언제나 너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어, 그게 빠꾸해도 된다는 말과 다를게 뭐니?”


그리고는 말한다, “결혼은 지금 남자친구 말고 서울에 집 있고 전문직 남자를 만나야 돼”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어떤 부모의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라는 말이라는 것을.

그러니 부모님은 나름대로 지지하고자 하신 “하고 싶은 걸 해라”라는 말은 나에게는 지지가 아닌 등떠밈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의도와 마음은 가려지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걸 해”라는 표면적으로 든든한 말에도, 그렇지 않은 마음이 담겨 있으면 꽤나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런 부모의 말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집을 집으로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피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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