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스물의 나

이십 대 후반에 보이게 된 것

by 흑임자인절미

"나는 스물일곱에 결혼을 할 거야!"



입버릇처럼 호기롭게 이야기하던 여덟 번째 스물이 이렇게나 빨리 다가올 줄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예측불허한 삶에 몸을 맡겨 이끌려오니 어느덧 이십 대 후반이 되었고 그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막연히도 스물일곱이면 멋진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아직도 서투른 게 더 많은 말하는 감자일 줄이야! 머리칼이 하얗게 새고 깊어진 주름에 지혜가 빼곡해지려면 갈길이 멀었는데 어른을 흉내 내려 립스틱을 바른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한 글을 써 내려가는 게 나의 오만한 태도는 아닌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또한 지난날의 기록이 될 것이므로 나는 또 고집하고 호기롭게 지금의 내 처지를 알지 못한 채 고이 모신 립스틱을 꺼내 바른다.




세상에 당연한 건 어느 곳에도 없다.

어떤 일이든 탓할 거리는 무궁무진한데 문제를 파헤쳐 들어가면 결국 그 중심에는 늘 내가 존재했다. 길들여져 당연히 여기게 된 매일을 어느 날 당연하지 않다고 자각하게 되면 이 세상 속 그 어떤 것에도 기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세상 속 무언가에 지탱하고 살아갈 수 있는 건 당연한 것이 어느 곳에도 없는 세상에선 나름대로 어떤 것도 당연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란한 세상 속 잠시 멈춘 채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을 때만이 세상을 하나씩 곱씹고 삼켜낼 수 있으며 진정으로 삶을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낯설게 여길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감사히 여길 수 있는 힘인 것이다.



자기 결정권을 가진 사람만이 제 삶의 주인이 된다.

우리는 생멸의 과정 속 너무도 많은 시선들에 둘러 쌓여 살아간다. 그 시선은 마치 방송용 카메라와 같은 것이라서 이따금씩 내가 아닌 나로 사는 연기를 하곤 했다. 마치 나만 보는 일기장에도 누군가가 볼까 꾸며진 말을 써내듯 거짓으로 살아가던 지난날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만든 일기장 속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여태껏 파랑새인 줄만 알았던 내가 새장에 갇혀있던 형색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느지막이 깨달은 사실로 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오로지 내 마음만을 최우선으로 살피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제야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연한 것도 정답도 없는 삶에서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정의해 낼 때 억압되지 않고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저마다의 보물찾기

언제나 삶에 있어 내 보물은 돈이라고만 여겼었다. 사람은 다들 그들이 가진 결핍에 의해 끊임없이 열망하고 갈망하는데 나의 결핍은 그런 것이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돈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라"는 말은 잘못된 환상 속에 사로잡힌 나를 저격한 셈이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착각하며 부단히 달려온 지난날, 이제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뛰지 못하게 되었을 때 7년간의 경력과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환상에서 깨어질 수 있었다. 나의 보물은 결코 경제적 여유만이 아니었음을, 당장 굶주려도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이 나의 보물이며 나의 행복이었음을. 그렇게 남들보다 늦은 생기를 띈 여덟 번째 스물에 내 삶의 또 다른 '진짜' 보물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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