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초록색으로 칠할 용기
"다들 힘든데 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
분명 제 삶에 대한 자유는 제각각에게 있지만 엄격한 세상의 잣대에 의해 몇 번이고 구겨져버릴 위기에 처한다. 하늘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싶은데 어디선가 "하늘은 결국 하늘색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물론 초록색이어도 된다. 하지만 독특하게 튀어버리는 나의 세계는 따끔한 시선을 끝내 못 이긴 채 타협하게 되고 정체성이 흐려진 초록과 하늘의 그 중간 어느 곳으로 가게 된다.
나 그냥 그런 현실적인 거 생각 않고 철딱서니 없이 살면 안 될까?
지난해 겨울에 떠난 한 달간의 미국 여행에서 배운 한 가지는 아메리칸드림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으로 보이는 그 어느 곳도 결국 다 똑같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 나는 본래 미국에 대한 엄청난 이상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던 건 다들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정해진 기준에 맞게 살기보다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고 존중한다는 점이었다. 길가에서 자연스레 선글라스를 끼고 노출 있는 복장을 한다거나 특이한 차림을 한 사람들도 다수였다. 어떠한 암묵적 약속이나 제한도 없이 본디의 색들을 마음껏 칠하는 느낌. 우리나라에서는 여행을 훌쩍 떠나서나 한 번 선글라스를 껴보고 과감한 휴양지 차림을 해보고 다시 돌아와서는 옷장에나 고이 모셔 두겠지. 그래서 그들의 알록달록한 자연스러움이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세상을 다 헤아리진 못한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요구되는 어떠한 가이드라인은 상관없단 듯이 각자의 제 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흔히들 독특히 자기만의 세상에서 튀어버리는 이들을 현실성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철딱서니 없다 생각하기 때문에. 철이 없다는 사전적 의미는 사리 분별력이 없다는 것인데 세상의 옳고 그름을 감히 누가 정의하는 것인가? 나는 궁금해졌다. 옳고 그름을 그 누구도 정의할 수없다면 현실성은 떨어지더라도 나만의 기준 역시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남들이 보기엔 사리분별력이 안 되는 철딱서니 없는 한 사람일지라도 내 세계에서는 낭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그냥 철딱서니 없이 살고 싶어졌다. 제멋대로지만 하늘을 초록색으로 칠할 용기를 철딱서니라고 생각하기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