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호, 겨울, 면접의 기억

기차표를 예매하며, 옛 기억이 문득 떠올라

by 숨결마다

기차를 타고 한강철교를 건널 때면, 창밖으로 보이는 63빌딩은 언제나 나를 25년 전 그해 겨울로 데려다 놓는다. 서울대 면접을 앞두고 몸을 실었던 새마을호, 그 면접 전날의 기억 속으로 말이다.

지방 고등학교의 '서울대 입학 후보생' 7~8명은 인솔 선생님 한 분과 함께 분수에 맞지 않는 새마을호 특실에 올랐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들어온 객실 안은 건조한 난방 기운과 푹신한 시트의 촉감,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신문 넘기는 소리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과 규칙적인 덜컹거림에 금새 잠이 들었고, 어느덧 천안을 지난 기차는 서울의 문턱에 다다랐다.

이른 점심 무렵, 기차는 한강철교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태어나 두 번째로 마주하는 서울의 풍경이었다. 시리도록 새파란 겨울 하늘 아래, 63빌딩은 특유의 황금빛을 내뿜으며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반짝였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을 뒤로하여, 우리는 멋적은 표정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단체사진을 한 장 남겼고, 역 근처 삼계탕집에서 대충 배를 채웠다. 처음 가본 관악산의 겨울 바람은 참 매서웠다. 대학교 안에 마을 버스가 다니는 광경에 호들갑을 떨며, 면접 장소를 미리 둘러보는 것으로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잠자리는 낡은 여관방이었다. 요즘 같으면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 1인실을 예약하고는, 면접 전날 공부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겠지만, 당시 우리 학교의 형편이나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했다. 선생님은 독방을 쓰시고, 아이들은 넷씩 짝을 지어 침대도 없는 온돌방에 몸을 구겨 넣었다. 가져온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근처 식당에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눅눅한 이불을 펴고 누워, 우리는 각자의 불안과 기대를 가지고 밤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면접 전날의 준비는 모두에게 서툴고 부족했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마치 누군가 우리의 성적표를 미리 읽기라도 한 듯, 이미 정해진 자리처럼 면접의 희비는 갈렸다.

학창시절 다들 하나의 목적지만 바라보며, 달려갔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삶의 선로는 훨씬 다채로웠다. 그날의 면접 결과는 각자의 오늘에 있어 그리 결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날 함께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소년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와준 운의 조각들에 의해 서로의 선로 위에서 각자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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