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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시아 Feb 28. 2023

내 몸 안에 만들어진 두 개의 아기집

시험관 1차 동결이식 후 쌍둥이가 찾아왔다

산부인과 의자를 ‘굴욕의자’라고들 부른다.

누구나 치과에서 봤을 법한 의자인데, 조금 다른 점은 양쪽 다리를 걸쳐서 다리를 벌리는 자세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인과 검사는 질 초음파를 통해 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의자에 앉으면 작은 커튼이 내 시야를 차단해 주고, 의사 선생님은 진료를 본다.

몇 년 간 난임병원을 다녔기에 한 달에도 서너 번 이상 커튼이 내 시야를 가려주었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내 자궁을 비춰주는 초음파 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선생님 말씀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늘 조마조마한 상태였다.

이번 달은 난포가 잘 자랐는지, 자궁 벽은 적절히 두꺼워졌는지, 임신이 아니었을 땐 생리로 잘 배출이 되었는지...



2차 피검사 일주일 뒤 진료는 남편과 함께했다.

남편은 진료실에 잠시 대기하고 있었고 늘 그래왔듯 초음파실에 혼자 들어갔다.

수없이 본 초음파지만 초음파 기구에서는 늘 약간의 냉기가 느껴져서 긴장하게 된다. 초음파 기구가 몸에 들어옴과 동시에 화면에 자궁이 비쳤을 때, 까만 콩 같은 점이 두 개 보였어서 나는 뭔가 잘 못 된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지만 거울모드나 기기 오류로 화면이 중복되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선생님의 말이 들렸다.

어머 쌍둥이네요~ 아기들이 좋은 곳에 예쁘게 잘 자리 잡았어요 ^^

믿기지 않아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선생님께 정말 착상이 된 게 맞냐고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내 질문에 축하한다고, 잘 키워보자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일어난 뒤 초음파 실 밖 진료실에서 두 손을 꼭 쥐고 기다리던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쌍둥이야..! 두 개가 다 착상이 잘 됐대!!!” 출력된 초음파 사진을 보며 나만큼이나 얼떨떨했던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과 임신확인서를 받고 선생님 설명을 들은 뒤, 일주일 뒤 내원하기로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모든 주기를 인공적으로 조절하여 한 임신이기 때문에 몸에서 임신 호르몬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9~10주까지는 프롤루텍스와 질정을 사용하며 임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셨다.

병원을 나서기 전 역시나 주사기가 가득 든 작은 가방을 받았고, 그 안에 초음파 사진을 숨기며 들뜬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병원에 대기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신을 준비하는 예비 엄마이기 때문이고, 낯선 이의 임신을 축하해 줄 마음의 여유까지는 없을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와서야 비로소 초음파 사진을 맘껏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병원에 오는 날 아침까지 체크했던 임신 테스트기도 두줄을 보여주었지만, 아무런 임신 초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을 시도했던 기간 내내 ‘무증상 임신’에 대해서 숱하게 검색해 보았어도, 정말 이렇게 증상이 없는 건지는 몰랐다.

배가 콕콕 쑤시지도 않았고, 잠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생리를 하지 않아서 생리통도 없는 상쾌한 상태였다.

(프롤루텍스와 질염으로 인한 간지러움은 여전했지만.)

생의 첫 임신 확인서에는 ‘다태아’가 체크되어 있었고, 출산 예정일이 기입되어 있었다.

집에 가서는 양가 부모님들께 임신 소식을 알렸다.

쌍둥이까지는 생각하지 않으셨던 시댁에서는 많이 놀라셨지만 마음 가득 축하해 주셨고,

어렸을 때부터 ‘우리 딸래미는 쌍둥이 낳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던 친정에선 경사가 났다.


그리고 며칠 전 엄마가 꾸셨다는 태몽 얘기를 해주셨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말하지 않으셨는데, 아기집을 보고 왔다고 하니 얘기를 해주셨다.

엄마가 고구마 밭에서 커다란 고구마를 세 개 캐셨다고 한다. 남편의 오랜 별명이자 애칭이 감자여서 너무 웃겼고, 좋았다.

남편을 닮은 아기들이 나오려나, 감자나 고구마 모두 구황작물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라준다는 뜻이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 끝무렵에는 주변 친척들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아직 심장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중간에 잘 못 되면 받았던 축하를 위로로 다시 돌려받게 되는 것이 싫었기에.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흐릿해지는 꿈일까 걱정 됐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지난 몇 년 간 아이를 갖기 위해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일은 내 일상이 되었고, 언제 임신이 될지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임신이 되니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임신을 기다리며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도 이게 정말 확실한 건가 의문이 들었다.

남편도 마냥 기뻐하지는 못한 것 같았고, 걱정이 많아 보였다.

나와 비슷한 감정일까 싶어서 이후 남편에게 아기집 두 개를 본 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어봤다.

남편은 쌍둥이를 임신하면서 내 몸에 갈 부담은 얼마나 클지, 또 아기들이 잘 붙어있어줄까 싶어서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역시 내 걱정이 먼저인 내 남편 최고 히히 :)


나는 말과 생각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내 안에 자리 잡은 두 명의 작은 생명을 위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지금까지 너희를 만나려고 이렇게 마음 고생했나 보다 생각하면서, 내 자궁 안에 작게 집을 지은 아기들을 기특해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이들에게 천천히 소식을 전해갔고 온 마음 가득 담은 축하를 받으며 임신을 실감했다.


나와 남편의 마음에는 불안함이 자리했지만, 두 손 꼭 잡고 재밌는 얘기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심장소리를 들으러 가는 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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