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다시 구조화하는 일

해봤어도 한 번 더, 우리만의 미디어믹스 만들기

by 이드 쉐이퍼

브랜드팀을 맡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도전해보고 싶으면서도 어렵게 느껴진 영역이 광고였습니다. 디자이너로 일할 때도 프로모션 소재를 만들거나 GDN 기획을 해본 경험은 있었지만, 이제는 팀장으로서 전체 흐름을 설계하고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되었으니까요. 단순히 아이디어를 던지는 것과 실제 성과를 관리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전사적으로 집중하는 제품과 프로모션이 있었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사용하던 관리 시트는 너무 오래되어 현재 목표와 맞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했지만, 팀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시작하기 쉽지 않은 '당연한 것들'

미디어믹스를 새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마케터 팀원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차가웠다.


"미디어믹스는 이벤트 같은 캠페인 단위로 관리하는 것 아닌가요?"

"퍼포먼스 마케터가 수치를 전문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영역 아닌가요?"


라는 질문들이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형적인 미디어믹스는 그런 형태로 운영되니까.

하지만 우리 상황은 달랐다. 퍼포먼스 마케터도 없었고, 대형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광고를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전사적으로 밀고 있는 대표 제품들이 분명 있었고, 체험단도 돌리고, 메타 광고도 돌리고, 인스타그램 콘텐츠도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이 모든 활동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각 활동의 성과를 관리하는 시트가 따로 있다 보니 동일한 제품의 동일한 일정동안 전반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 트래킹 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트래픽이나 구매전환을 할 수 있는 자사몰 운영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판매하고 있는 타 채널이 있다면 특정 기간의 마케팅 활동에 대한 매출 추이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리 팀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인 것은 변함없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모든 활동을 한눈에 보며 점검할 수 있어야 했다.

전형적인 형태가 아니라도, 우리에게 맞는 미디어믹스를 만들어야 한다. 규모는 작더라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고객들에게도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생각을 바꾸니 보이는 것들

팀원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우리만의 미디어믹스를 설계했다. 집중하고 있는 제품을 캠페인으로 구분하고, 각 제품별로 진행하는 체험단, 메타 광고, 인스타그램 콘텐츠, 인스타 피드 광고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체 예산을 우선순위 제품별로 나누고, 사용할 매체별로도 한 번 더 나누어 배분했다. 이 시트를 실제로 관리할 팀원들에게 한번 더 보여주었다.


"오, 이런 식이면 지금 우리 활동을 관리해 나가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하겠네요."


시트의 구조가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팀원들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 내가 하려던 접근은 처음부터 똑같았다. 진행 중인 활동들을 정리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단순한 사고의 전환에서 비롯한 약간의 수정이었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보여주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결국 소통의 문제였던 것이다.


한눈에 보는 게 좋아서

나는 원래 진행하고 있는 일을 한눈에 펼쳐보는 걸 좋아한다. 병렬 구조를 선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나 개인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관리하는 것도 전부 노션으로 포맷화해서 한눈으로 펼쳐놓고 수시로 점검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통제광적인 면모가 분명 있는 것 같긴 하다.

이 습관이 팀 업무에는 도움이 되었다. 미디어믹스를 개설하고 나서 전사 주간 미팅과 외부 고문님과의 정기 미팅에서 우리 팀의 주요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해 한결 편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필터를 걸어 제품별, 일정별, 매체별로 진행 상황과 결과를 보여주니 협업팀들도 잘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 중요한 변화는 협업의 질이 달라진 것이었다.


"이번에 XX제품에 맛이 추가되는데, 저번에 효과 좋다고 하셨던 소재의 광고를 일주일만 더 돌릴 수 있나요?"


같은 요청을 상품팀에서 주면서 제품 마케팅의 주요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되었고, 특히 영업팀에서는,


“광고를 언제 하는지 몰라서, 채널 응대 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말씀하신 저 예정일에 프로모션 해볼 수 있도록 채널과 소통해 보겠다”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서로의 목적과 상황을 완전히 이해해야만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미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같은 사이클을 돌며 함께 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엔 제품 캠페인 시작 시점에 맞춰 요약본을 공유하고, 슬랙에 간단한 사전 안내를 하자 실제로 '광고 중이라 어필 가능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사례가 늘었다. 미디어 믹스가 단지 마케터만의 자료가 아니라, 전사의 목표를 정렬하는 도구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걸 체감한 순간이었다.


사실은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

미디어믹스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관리 도구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팀이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는 언어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 언어가 생기니 다른 팀과의 소통도 훨씬 원활해졌고, 우리 자신도 하고 있는 일의 전체 그림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표와 시트로 정리하는 일은 늘 재밌고 좋다. 내가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자신 있는 방법을 통해 팀 업무의 이해를 높여 협업이 보다 유연하고 강력해지도록 기여할 수 있었던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팀원들이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필요했던 것 같다”, “한결 관리하기 편해졌다”라고 말해주었을 때의 보람이 컸다.

브랜드팀의 팀장이 되어 가장 어려웠던 광고 영역에서, 결국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낸 경험이었다. 어떤 상황일지라도 그 상황에 맞는 답은 분명 있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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