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함 끝에 만나는 환희
제품 포트폴리오를 리뉴얼하는 중에, 내부에서는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도 손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타깃이 명확해지고 제품도 새로운 옷을 입을 것인 만큼, 이를 자연스럽게 포용하는 새로운 비주얼이 필요하다는 이유였어요.
이미 두 단계에 걸친 디자인 리뉴얼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 에셋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면 우리 브랜드 같지 않아?' 하는 식의 직감에 의존하는 운영이 대부분이었고, 그래픽도 사실상 반복 사용에 가까웠습니다. 어디까지 변형해도 되는지 설명할 수 없기도 했고요.
우선, 타깃 페르소나가 따르고 싶은 브랜드 페르소나를 먼저 만들어, 디자인 시스템 리뉴얼의 토대로 삼기로 했습니다.
"우리 타깃이 공감하거나 따르고 싶어 할 만한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두 방향으로 의견이 갈렸다. 공감할 수 있는 동반자 같은 존재가 될 것이냐, 아니면 따르고 물어보고 싶은 멘토 포지션으로 갈 것이냐. 동반자 포지션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처럼 다가가야 부담스럽지 않다"라고 했고, 멘토 포지션 쪽에서는 "전문성이 있어야 브랜드로써의 신뢰감을 줄 수 있다"라고 맞섰다.
우리 타깃은 정보는 많이 알고 있지만 실천이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그 과정을 겪어본,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하는 게 맞지 않을까. 수차례 미팅을 통해 각 브랜드 페르소나의 특징을 상세하게 기술한 후, 대표진과 미팅을 했다. 논의 끝에 멘토 포지션으로 방향을 잡은 후, 타깃과의 관계를 정의했다.
포지셔닝 전략은 '건강한 균형이 있는 삶을 위한 멘토',
핵심 메시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 자체를 즐기기. 각자의 속도로 영위하는 건강한 삶'
차별화 포인트는 고객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일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을 이미 겪어본 사람, 그래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 사람.'
브랜드 퍼스널리티는 Trustworthy(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Smart(똑똑하고 트렌디한), Playful(유쾌하고 위트 있는).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톤 앤 매너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Step1. 기존 디자인 시스템 분석하기
성숙해진 브랜드를 표현할 새로운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기존 디자인 시스템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존 디자인 자산 중에서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반대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기존 디자인 시스템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샐러드라는 원물 그대로의 음식을 파는 곳임에도, 무드보드에 자연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작업을 할 때마다 참고해 왔던 것인데, 이제야 그 부분이 보인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즐거움'이라는 감정 표현에 치우치다 보니 폭죽 등 인공물을 통한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디자인 트렌드도 함께 분석했다. 브랜드의 방향성에 포함시킬 만한 요소들을 찾아보며, 고유의 무드를 유지하면서도 트렌디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텍스처가 살아있는 그래픽과 공간감을 부여하는 방식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움과 깊이감이라는 키워드에 잘 맞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 무드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새로워진 브랜드 톤 앤 무드는 기존 보다 조금 더 무게감이 느껴지면서도, 건강한 삶에 대한 지혜와 경험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브랜드 페르소나를 구성하고 있는 단어를 여러 사이트에서 검색하며 이미지화해나갔다. 브랜드의 방향성과 시각 요소가 분리되지 않도록,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물, 상황, 색상, 그래픽 등 다양한 이미지를 모으고 또 분류하며 새로운 브랜드를 담은 무드보드를 만들었다. 브랜드를 다양한 형상으로 치환하며 하나의 결을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
본격적으로 기존 컨셉에 대한 솔직한 토론이 이어졌다. 차별성을 위해 택했던 '바다에 뛰어드는 듯한 즐거움'이라는 컨셉이 과연 '식품'에 잘 어울리는가가 가장 큰 논점이었다. 다양한 레퍼런스 서치와 충분한 논의 끝에, 기존 컨셉의 에너제틱함은 유지하되, 다른 컨셉 스토리로 풀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장 해결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드보드에 자연물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잡은 타깃 페르소나는 소위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이감 있는 디자인 컨셉이 필요했다. 무드보드에 자연물을 의식적으로 포함시키며, 다양한 질감을 더했다. 이를 토대로 컬러 시스템의 컨셉을 바꾸었는데, ‘해변에서 깊은 바다로 뛰어드는’ 기존 컨셉에서 ‘양질의 토양 위에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건강한 식물의 생명력’으로 재구성하였다. 빛과 그림자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포함되며, 원물의 자연스러움, 생명력, 그리고 깊이감이 더해져 갔다.
그래픽 모티프도 재검토했다. ‘즐거움’을 다양하게 표현해 보자라는 목표로 만들었던 6종의 그래픽 모티프는 실제 사용에서 그만큼의 파급력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솔직한 논의를 통해 실무자들의 입에서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가장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브랜드 톤이 일정하려면 한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되, 변형을 통해 다양함을 주어야 할 것 같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레퍼런스를 조사해 봤더니, 1개에만 집중해서 사용하되 상세한 가이드를 구축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기본 로고의 입모양에서 출발했던 모티프 1종을 기본 모티프로 삼되, 총 4가지 사용 가이드와 그에 대한 의미 및 컨셉을 새롭게 부여하여 일관성과 다채로움을 모두 챙겨보기로 했다.
재구성한 컨셉과 모티프 사용 가이드를 중심으로 인스타그램 콘텐츠에 디자인을 입혀나가기 시작하자,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비팔로워 도달률이 매달 평균 4% 이상씩 꾸준히 증가했고, 특정 피드 디자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저장 수나 공유 비율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일한 광고비를 사용했는데도, 때로는 이벤트가 붙지 않은 콘텐츠임에도 인게이지먼트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숫자들은 단지 '디자인이 예뻐졌다'는 반응을 넘어서, 브랜드의 메시지가 시각적으로도 읽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브랜드 디자인이 콘텐츠의 전략적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팀원들이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고민의 결과가 담긴 디자인 시스템을 이번 주에 완료하였다. 이번 가이드에는 특히 다양한 사이즈의 디자인물 제작 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레이아웃, 여백 가이드를 디테일하게 넣어 어떤 실무자가 보아도 손쉽게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타깃 선정과 이들을 겨냥한 브랜드 퍼스널리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반영한 디자인 방향성이 일치할 때 예상보다 빠른 반응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맛보았다.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감각적으로 탁월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각자의 집요함을 최대로 꺼냈던 것 같다. 각 단계를 지나면서 "왜 이래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명확해질 때마다, 브랜드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렷해진 방향과 단단해진 밀도를 가진 디자인이 더 많은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고객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