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평야 한복판에서
봄이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논바닥은 이제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지금은 산불예방을 위해 쥐불놀이를 하지 않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우리 모두 논으로 나갔다. 분유통 옆에 구멍을 뚫고 철사로 손잡이를 만든 후 나무 등걸과 불씨를 넣고 누가 누가 잘 돌리나 내기를 하는 마음으로 세차게 돌리곤 했다. 어두운 밤의 쥐불놀이는 놀이동산의 대관람차처럼 빛을 내뿜으며 돌고 또 돈다. 한바탕 쥐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농부는 바싹 마른논에 물을 대고 볍씨의 싹을 틔우고 못자리 준비를 한다. 할머니의 주름살처럼 쩍쩍 갈라졌던 논바닥은 물을 주는 대로 삼킨다. 금세 논은 보들보들한 아기의 피부와도 같이 촉촉해진다. 5월에 이앙기가 논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신생아의 솜털처럼 여린 연두 빛 모가 줄을 맞춰 심어져 있다. 물이 가득 대어진 논에 연두 빛 모는 물빛에 반짝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곤 한다. 어린 모들이 담긴 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제 자라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기가 성장이 더디듯이 어린 모도 더디게 자란다.
여름이다. 푸르고 빽빽하게 자란 벼들이 논을 가득 메웠다. 내가 살던 호남평야는 일제 강점기에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된 곳이다. 논들의 끝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김제까지 닿아있다.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수탈하기 가장 좋았던 곳. 그래서 철도를 놓고 제일 먼저 역이 생긴 곳. 우리나라 최초의 역은 서울역이 아니고 춘포역이다. 물론 서울역처럼 거대한 종착역이 아니고 작은 간이역이기에 빨리 건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춘포역은 최초의 역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춘포는 내 어린 시절에 대장촌이라는 일본 농장의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다. 수십 년 동안 오래된 이름까지 빼앗기며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다. 수탈과 아픔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싱그러운 벼들은 논들을 따라 수십 킬로미터까지 초록의 물결을 이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논의 계절은 바로 이때이다. 바람에 춤을 추는 초록 물결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눈이 맑아진다. 어쩌면 농부들의 시력이 그래서 좋을지도 모르겠다. 동네의 어른들 중에 안경을 쓰는 분을 보지 못했다. 자연이 주는 건강함이다.
가을이다. 점차 호남평야는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숙인 벼를 보고 있노라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격언이 생각난다. 인간의 겸손을 빗댄 격언이지만, 내 눈에는 벼에 달려있는 풍성한 낟알만 보인다.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농부의 딸의 마음이다.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명화는 밀레의 「이삭 줍기」였다. 지금이야 방안에 커다란 달력을 걸지 않지만 예전엔 아름다운 명화나 멋진 자연을 담은 커다란 달력이 집집마다 걸려 있었다. 세 명의 여인이 이삭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 모습이 가끔 엄마의 모습과 중첩되었다.
겨울이다. 이제 논은 겨울잠을 잔다. 그렇게 5개월간 깊은 동면에 취한다. 어떤 부지런한 농부는 본인도 놀지 않고, 논도 놀리지 않는다. 논은 보리씨나 밀씨를 받아 꽁꽁 언 땅에 숨겨준다. 요즈음 국내산 콩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콩씨를 품기도 한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싹을 살짝 꺼내놓는다. 겨우내 눈과 추위 속에 더욱 단단해져야 봄에 열매를 잘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하얀 비닐로 짚단을 말아놓은 둥근 짚더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의좋은 형제」가 생각난다. 형은 신혼인 동생을 위해, 동생은 자식이 많은 형을 위해 추수가 끝난 후 볏가리를 들고 몰래 갖다 놓다가 나중에 서로의 우애를 확인하는 훈훈한 전래동화이다. 지금은 콤바인으로 쌀을 다 받아버리기에 낟알이 달린 볏가리를 나눌 수는 없지만, 겨울 논에 있는 하얀 짚더미를 볼 때면 이 동화가 생각나곤 한다.
농부의 보살핌을 잘 받은 논은 추수할 때 수확량이 좋다. 마치 부모의 보살핌을 적절하게 받은 아이가 자라서도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듯이. 농부는 모내기를 한 후에 모가 없는 빈자리에 일일이 모를 심어 때우고, 적당히 비료를 주고, 부지런히 피사리(벼와 비슷한 잡초인 피를 뽑아내는 일)를 한다. 푸른 벼보다 웃자란 피들을 뽑아주면 벼들은 정갈하게 키를 맞추고 자란다. 욕심이 과한 부모가 아이를 위한답시고 아이에게 너무 많은 교육을 시키면 아이가 병들듯이, 논도 너무 많은 비료를 주면 벼가 키만 커져서 태풍이나 장마에 넘어지기 쉽다. 또 비료의 배합을 잘못하면 벼의 줄기만 튼튼하고 이삭은 부실한 경우도 생긴다. 적절한 관심과 보살핌. 말처럼 쉽지 않다. 50년 농사를 지은 부모님도 매년 다르다고 하신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농사는 여러모로 비슷하다. 그래서 자녀교육을 농사에 비유해서 자식농사라 부르나 보다.
논의 일생은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어린아이처럼 보드란 연둣빛 모, 청년을 닮은 푸른 벼, 노년을 닮은 황금빛 나락. 그리고 세상을 떠나고 나면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텅 빈 논의 겨울의 모습조차 논과 우리의 인생은 똑같다. 어렸을 때는 그 모든 것들이 익숙한 것들이었기에 멋지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다 보니 시골에 펼쳐진 논들을 볼 때서야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깨닫는다. 논의 모습이 변할수록 나의 모습도 한층 익어간다.
일 년 농사를 마친 농부가
노을이 비친 텅 빈 논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듯이
꼭 그처럼 나도
산 너머로 사라지는 석양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