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에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서둘러 식당에 간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남편이 없다. 내가 주차를 하는 사이 먼저 가서 음식을 시켜놓기로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통 모르겠다.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은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또 전화를 건다. 여전히 받지 않는다. 다섯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남편이 아니었다. 여자 기계음이 ‘전화기가 꺼져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불과 십 분 만에 무슨 일일까. 남편과 헤어진 곳을 찾아갔다. 혹시 사고를 당했을까? 아니면 누가 납치했을까… 머릿속은 별의별 생각으로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헤어진 장소에는 아무런 일이 없다. 구급차도, 쓰러진 사람도 없다. 다시 식당에 간다. 혹시 남자 한 명 왔냐고 물으니 안 왔다고 말한다. 십오 분 동안 나는 시장사거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정신을 놓고 돌아다녔다.
팔다리가 꽉 묶인 기분이다. 머리는 점점 하얘지고 있다. 결국 남편의 직장 방향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무슨 일이 없다면 점심시간이 끝날 시간이면 나타나겠지.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 남편이 내가 생각했던 곳과는 다른 식당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부른다. 귀신에 홀린 얼굴로 남편을 보니 남편이 성이 나 있다. 음식이 다 식는데 아내는 나타나지 않고 심지어 정신 나간 얼굴로 식당을 지나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너무 황당하고 너무 기가 막히고 너무 슬프고 너무 기쁘니 눈물도 나지 않는다. 이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은 내가 식당을 잘못 알아들어서 벌어진 일이다. 코다리 식당을 해물찜 식당으로 착각했다. 한번 나간 정신은 잘 돌아오지 않는다. 먹는 둥 마는 둥 코다리만 야속하게 보며 밥을 먹었다. 내 실수지만, 얼빠진 내 얼굴에 남편이 나를 위로한다. 서둘러 정신을 차려본다.
누군가와 엇갈려 길을 놓치는 것은 나의 트라우마다. 아마도 초등학교 이 학년이었을 듯, 친구를 따라서 시내의 큰 교회에 처음 갔다. 집 근처로 우리를 데리러 오는 교회 버스를 타고 갔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타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줄은 몰랐었다. 아홉 살 어린이가 경험해 본 최초의 북새통이었고, 결국 친구들도 잃고 버스도 잃었다. 매애매애 울며 기억을 더듬으며 걸어갔다. 어린이가 울고 있으니 시장의 상가 아저씨가 왜 우냐고 물었고, 집을 잃어버렸다고 대답했다. 친절한 아저씨는 우리 집에 전화를 해주셨다. 아빠는 단숨에 오셔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2km를 집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또 이런 적도 있다. 그때는 초등학교 사 학년 때인데, 엄마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의 큰 시장에 갔다. 아마 시내버스도 처음 타봤을 것이다. 돌아오는 시내버스에 엄마는 타고 나는 못 탔다. 그나마 열 한살이라고 인지능력이 있어서인지 버스노선대로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이 두 번의 기억은 나의 뇌에 단단히 저장되어 있다. 어디를 가든 위치를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이들을 키울 때 내 눈은 아이들에게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 엄마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내 시선은 항상 아이들을 쫓았다. 마치 미어캣이 고개를 쭉 빼고 보듯이.
오늘 남편이 증발해 버린 십오 분은 무한대의 시간이었다. 아이러니이다. 나는 내가 집을 잃어버린 것처럼 남편을 찾아 헤맸다. 아홉 살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잊었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은 되살아나 나를 콕콕 찔렀다.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 헤어진다는 것,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다. 마침 「오뒷세이아」를 읽고 있어서인지 오뒷세우스의 처지가 이해되었다.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마침표를 찍은 영웅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험난했다. 그가 가는 길에는 폭력과 유혹이 열두 번이나 반복되었고, 결국 그는 헤매고 헤맨 끝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뒷세우스는 아들과 아내와 아버지와 재회하면서 「오뒷세이아」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또 이런 영화도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중국영화 「오일의 마중」이다. 문화대혁명시절 루옌스는 반국가인물이 되어 수배받아 도망치는데, 딸인 딘딘이 주연배우 시켜준다는 꼬임에 빠져 아버지를 밀고한다. 공안이 루옌스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고 부인인 평안위가 말리다가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는다. 평안위는 남편이 떠나면서 했던 말, ‘5일에 돌아오겠다’만 기억한다. 딘딘이 아버지가 미워 아버지 사진을 다 찢어버려서 평안위는 나중에 돌아온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5일만 되면 역으로 향한다. 머리가 하얘지도록 시간이 흘렀지만, 루옌스가 평안위를 데리고 5일마다 역으로 나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오뒷세이아」와 다르게 「오일의 마중」의 결말은 쓸쓸하다. 오늘 나는 남편을 기다리는 평안위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는 다행히 해피엔딩이다. 여름의 뙤약볕에서 십오 분을 헤맸지만, 그래도 바로 남편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야 이야기를 해보니 내가 단단히 잘못 들었다. 나는 ‘맛있다’라는 말만 기억했고, 최근에 맛있게 먹은 해물찜 식당으로 당연히 갔던 것이다. 하필이면 식당도 틀리고 전화기도 전원이 꺼지고…. 전화라는 시대의 명물을 너무 믿었다. 아직 휴대전화가 없는 아들과 약속할 때는 꼼꼼하게 한다. 혹시 시간과 장소가 엇갈려 만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세상에서는 점차 사람들의 의식이 느려짐이 느껴진다. 약속 장소도 헤매고, 약속 시간도 늦는다. 그저 전화로 ‘나 좀 늦어’라고 말하면 끝이다. 생활의 편리 속에서 우리는 전화기에 너무 예속된 것은 아닐까. 전화기를 잃어버리게 되면 일상이 마비된다. 조그만 스마트폰 하나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번 해프닝도 휴대전화가 꺼져서 더 큰 혼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식당에 남편이 없었다면 남편이 한 말을 곱씹었을 텐데, 전화를 안 받거나 이내 전원이 꺼져버리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면서 차분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계속 꺼진 전화기에 전화를 걸며 사방팔방 다녔다.
오래전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통신사 광고가 있었다.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세상은 아닐지라도 잠시 전화기를 꺼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스마트한 세상에 종속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