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즐거움

브런치 스토리

by 방수미

글쓰기의 즐거움에 빠졌다. 방수미라는 이름 석 자 앞에 붙일 수식어 <수필가>라는 직업이 생긴 후이다. 나는 작년에 수필가로 등단했다. 수필 쓰는 것은 나에게는 행복이었고, 다른 사람과 내 행복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었다. 수필을 통해 나는 과거의 나와 만난다. 행복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었다. 고통 속에 있는 과거의 나를 현재로 데리고 와서 치유한다. 그리하여 미래의 행복 스티커를 한 장 붙인다. 수필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나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공감받고, 나도 다른 작가의 글에서 공감받는, 공감의 뫼비우스 띠가 연결된다.

초보 수필가에게 글을 쓰는 지면은 한정적이다. 올해 세 번의 청탁을 받았다. 열심히 쓰는 글 중에 세 편만 햇빛을 볼 수 있다. 글쓴이가 유일한 독자가 되는 아쉬움은 브런치 스토리에서 해결된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나는 ‘작가님’이 되었다. 이제 모든 글이 빛을 본다. 읽어주고 라이킷해주시는 다른 작가님들의 호응에 머리는 무엇을 쓸 것인가 궁리하고 손은 바쁘다. 처음엔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작가라는 호칭이 부끄러웠지만, 점차 그 옷은 나에게 어울리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나면 브런치 스토리 먼저 접속한다. 구독하는 관심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시선과 삶을 본다. 좋은 명언과 글귀도 마음에 담는다. 브런치 작가들이 공들여 쓴 글에서 많이 배운다.


주변 친구들에게 수필을 배우고 써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모두 손사래를 친다. 글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나라고 글쓰기가 쉬웠겠는가. 작년에 수필 반에 들어가 수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한 발 한 발 아장아장 걸었다. 잡다한 행상처럼 이것저것 나열하고 짜 맞춘 글에 선생님의 첨삭을 받으며 성장했다. 사각형이던 글은 점점 동그라미가 되었다. 깎아낸 글의 톱밥은 버리지 않는다. 모두 상자에 담아 언제고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이 글에 어울리지는 않더라도 다른 글에는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깎아지는 것은 글뿐만이 아니다. 살아감에 불필요한 요소들은 과감하게 버린다. 수필도 인생도 여백의 미가 생겼다.

수필을 쓰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도 생겼다. 사물에, 장소에, 시간에 의미를 두니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물은 언제나 좋은 소재로 나에게 저장되었다. 최소한 내 글의 독자들이 시간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며 원고지 15장을 쓰기 위해 나를 쥐어짠다. 그렇게 쓰인 글에 더 큰 의미가 더해져 그 사물들은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소중한 존재가 된다.

단어 선택에도 고심한다. 보다, 쳐다보다, 바라보다, 시선을 주다…. 한 글에, 한 문단에 반복되는 단어가 없도록 나눈다. 단어의 뜻을 살피고 적절하게 배치한다. 손으로 글을 쓰지만, 이러한 행위는 입으로도 나온다. 어느새 내가 사용하는 단어가 많아졌음이 느껴진다.


주제를 정하고 시작하면 좋겠지만 가끔은 무작정 쓴다. 오늘 있었던 일화를 남기고픈 욕심이다. 당장 완성하지 않아도 좋다. 시작이 반이라고 ‘현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첫 시작을 한다. 기승전결 맞지도 않는 글을 계속 들여다보며 지우개한다. 글은 어느새 완성된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수십 번, 수백 번의 지우개질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글의 주제가 생긴다.


글쓰기를 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중국의 시인 백거이이다. 백거이는 시를 쓰면 동네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할머니가 알아들을 때까지 고쳤다고 한다. 글이 나 혼자 잘난 척하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백거이의 철학을 글을 쓸 때마다 떠올린다. 나는 내 글을 남편에게 처음 보여준다. 독자의 입장에서 좋은지 어떤지 확인받는다. 남편의 조언은 언제나 큰 도움이 된다.

오스카 와일드는 하루에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오전에는 시를 하나 쓰고 콤마를 하나 지워야 했지요, 오후는 그 콤마를 하나 다시 써넣어야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오늘, 이 글에서 부사 하나를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한다. 글쓰기의 즐거움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문학 계간지 여기 55호에 실린 ‘소나기와 나’의 당선 소감>


모든 것이 풍성하고 결실을 맺는 계절에 등단하게 되어 매우 행복합니다.

수필을 쓰면서 사물의 본성을 생각하고, 사물과 ‘나’를 연결시키고,

사물을 통해 ‘나’를 바라봤습니다.

수십 번의 반복적인 글쓰기 속에서 바라봄을 넘어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행복한 ‘나’였습니다.

수필은 저를 행복으로 데려다주는 끈이었습니다.

가족의 관심과 응원과 사랑 속에 거둔 큰 수확이라

자랑스러운 아내와 엄마가 된 것 같아 그 기쁨이 더 큽니다.

수필은 나의 이야기지만, 현실과 현재 속에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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