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욕장에서
벌써 칠월이고 방학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마치 의무라도 되듯이 물놀이에 열중한다. 다행히 부산에 사는 우리는 바다와 계곡 접근성이 좋아서 여러 군데에서 물놀이를 골라 즐길 수가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파도타기, 송정 해수욕장의 서핑, 장산계곡의 물놀이. 어디서든 물과 함께 신난다.
나는 호남평야의 한복판에 살았다. 근처에는 커다란 강만 있고, 바다나 계곡은 멀었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집마다 있던 시절도 아니니 어딘가에 놀러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 년에 딱 한 번 부모님의 계모임에서 온 가족이 계곡으로 물놀이를 떠났다. 나는 여름방학이 되면 ‘그날이 언제 오나?’ 하며 손꼽아 기다렸다. 물놀이도 기대되고, 엄마 친구의 자식들인 또래의 친구들을 그때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깨끗하고 깊은 계곡에서 어른들은 물놀이보다는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데 열중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끼리 노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어른들이 우리를 커다란 검은 주부(튜브의 촌스러운 말)에 태워서 말처럼 끌어주시면 신나서 꺅꺅거렸다. 그날은 잔칫날이기도 했다. 다양한 음식과 과일과 콜라가 푸짐하게 있었다. 지금처럼 식음료가 풍부하던 때가 아니어서 우리는 놀다 먹고 놀다 먹고 몸을 바쁘게 움직이곤 했다. 일 년 중에 가장 행복한 날을 꼽으라면 나는 계곡에 가는 날을 꼽는다. 수십 년이 지나 빛바랜 사진처럼 내 기억에서도 옅어지고 있지만, 지금도 여름이면 그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빛이 주는 미묘한 변화 속에서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을 포착하여 그리는 인상파 화가처럼. 어린 시절 여름날의 향기는 나에게 그렇게 느껴지고 남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 교육 중에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수영이다. 아이들은 일찍 수영장에 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 다니기에 거북이보다 더 느린 달팽이처럼 배웠지만, 그렇게 7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 물과 친숙하다. 수영은 영법을 잘하는 것도 좋지만 수경이 없이도 놀 수 있는 개헤엄도 중요하다. 다행히 수영장에서 개헤엄은 물론 재미있게 물에 뛰어드는 것을 가르쳐 주었는지 파도만 오면 그렇게 몸을 던진다. 아이들은 얼굴만 내놓고 동네 한 바퀴를 돌 듯 동그랗게 바다 한 바퀴를 돈다. 마치 강아지가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행복한 그 얼굴들을 볼 때마다 나에게 칭찬한다. 아이들 의사와 무관하게 꼭 수영을 가르친 이유는 물놀이장 사고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보도되는 것도 두렵고, 내가 수영을 못하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수영을 못하니 물이 두렵고, 어린아이처럼 튜브가 없으면 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 튜브 없이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다행히 아이들이 내 몫까지 신나게 놀아주니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가끔 엄마 속도 모르고 깊은 곳까지 들어오라고 성화를 부리는 아이들 덕분에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음에도 한 번씩 깊이 들어가곤 한다. 그러나 파도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버릴까 무서워 후다닥 아이들 얼굴만 보고 돌아서 나온다.
어린 시절 일 년에 딱 한 번 있었던 계곡 물놀이가 아쉬워 한이 맺혔나 보다. 나는 여름이면 바쁘게 물을 찾아다닌다. 바다 가까이에 사는 것은 참 좋다. 언제든 계획 없이 바다에 가서 놀 수가 있다. 부산은 해변이 긴 만큼 해수욕장이 많고 다양하다.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라서 관리도 잘 돼서 편리하고 깨끗하다. 우리는 주로 해운대 해수욕장과 송정 해수욕장을 간다. 나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관광객이 되고, 송정 해수욕장에서는 우리 바다에 온 기분을 느낀다. 가끔은 석양을 보러 가장 멀리 있는 다대포 해수욕장에 가기도 한다. 해 뜨는 바다부터 해 지는 바다까지 있는 곳. 이것이 부산의 매력이다. 집 근처에 있는 장산 계곡은 물이 풍부하고 깊어서 풍덩 빠지고 놀기 좋다. 이렇게 물 많고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여름이면 어디든 물놀이 갈 수 있는 우리 집에 있는 것이 바로 피서다.
오늘부터 여름방학이다. 조용하던 오전의 평화는 끝나고, 북적북적하고 시끌시끌한 시간이 시작된다.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온몸이 까맣게 될 때까지 열심히 물놀이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