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여행지에서

by 방수미

오래간만에 포토북을 펼쳤다. 앨범보다 부피가 작고, 다양한 크기로 사진을 첨부할 수 있고, 내용도 쓸 수 있어서 여행을 다녀오면 꼭 포토북을 만든다. 이차원 평면 사진이지만, 마치 삼차원 팝업북처럼 사진이 벌떡 일어나 나를 생생한 그곳으로 안내한다. 한 장씩 넘기면서 그 순간 그 장소 그 사람을 회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문득 사진 한 장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어렸을 때부터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이 하던 놀이는 부루마불게임이었고, 두 번째 놀이는 동생들과 하던 각 나라의 수도 맞추기 빙고게임이었다.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 나라들에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결심 때문이었는지 많은 여행을 했다. 여행은 그 나라의 풍경, 음식, 문화 등 다양한 추억을 남겨준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추억은 사람이었다. 한 사람 때문에 그 도시가 소중해지기도 한다.

에펠탑을 보면 내가 그 에펠탑에 올랐다거나, 에펠탑 앞 잔디광장에서 쉬었다든가 하는 추억보다 먼저 생각나는 식당이 있다. 에펠탑에서 이십여 분 거리에 숙소를 얻고 에펠탑에 다녀오는 날이었다. 에펠탑 앞 광장에서 파리지앵처럼 맥주를 한 병 마셨다. 호화로운 야경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급하게 화장실을 찾게 되었다. 이미 깜깜한 밤이었고, 급하니 숙소를 찾기가 더 힘들었다. 결국 어느 식당에 들어가 짧은 영어로 ‘토일렛, 플리즈’라고 말했다. 젊은 사장은 흔쾌히 ‘오케이’라며 화장실을 알려주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나왔다. 다음날 그 식당을 찾아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름 은혜 갚은 까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식당도 같고 저 식당도 같아서 찾을 수가 없었다. 전날 이미 길을 한바탕 헤맨 끝에 들어간 식당이어서 뚜렷이 기억할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포기하고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주문하고 화장실을 갔는데, 특별한 문양의 화장실 수전을 보니 바로 어제의 그 식당이었다. 나는 무신론자였지만, 그 식당으로 안내해 준 신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나와 가족은 제대로 찾았음에 신났고,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남편이 어제 있었던 일을 간략 설명하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마음씨 좋은 사장의 음식은 맛있었고, 우리는 다음날도 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지금도 파리를 생각하면 ‘예술장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식당이 생각난다.

또 이런 적이 있었다. 두 살 딸과 뱃속의 둘째를 데리고 터키 이스탄불을 여행할 때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에서 폭이 가장 좁은 지역이 루멜리인데 거기에 오스만튀르크 시절의 성벽 루멜리 히사르가 있어서 구경하러 갔다. 성벽 관람을 하고 근처 작은 닭고기 요리 가게에 들어갔다.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음식을 포장해 가려고 기다리던 어느 노신사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과 터키가 형제의 나라라며 -터키인들은 6·25 때 유엔군으로 참전했는데, 그 뒤로 우리나라를 마음에 형제국이라 여긴다- 반가워하시고 아이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복해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기억에 남을 일인데 나중에 계산하려고 보니 우리의 음식값도 지불하고 가셨다. 몇 년 후 두 번째로 이스탄불을 찾았을 때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갔다. 닭고기 요리 쿄프테가 특별히 맛있기도 했지만, 얼굴도 생각나지 않고 스치듯 지나가신 그분이 생각 나서다. 혹시 동네 주민이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으나 사장에게 그분에 대해 설명해도 이미 아들로 바뀐 가게 사장은 알지 못했다.

세 번째 추억은 키르기스스탄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은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연속되었다. 택시 기사들은 자진해서 우리에게 좋은 곳을 안내했고,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은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기대했던 광활한 산맥이나 호수, 자연도 대단했지만, 그 속에 담긴 키르기스스탄인들의 따뜻한 마음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온 몇 달 후에 며칠 동행한 택시 기사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말을 했을 정도이다.


세상의 모든 향기는 아름답지만, 사람이 내뿜는 향기야말로 가치가 가장 크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파리나 터키나 키르기스스탄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들이 먼저 생각난다. 파리의 식당은 잘 되고 있을까, 터키의 노신사는 지금도 한국인 관광객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을까, 키르기스스탄의 택시 기사의 아이들은 많이 컸을까. 이 외에도 길을 헤매는 이방인에게 친절하고 성심성의껏 길을 알려준다거나, 어린 아가들을 데리고 있으면 자리를 양보한다던가, 무거운 가방을 번쩍 들어주는 친절은 수시로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의 향기로 채워진 도시는 번성할 것이고, 향기로움에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


부산은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파도가 넘치는 해운대해수욕장과 바다 앞에 있는 해동용궁사는 특히나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나도 관광객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친절을 베풀고 싶지만, 그저 길을 물어보면 손짓과 발짓과 인터넷 지도로 알려줄 뿐이다. 언어의 장벽이 이렇게 클 줄이야. 친절마저 쉽지 않다. 문법 위주의 영어교육을 받은 중장년 세대는 영어 회화가 너무 어렵다. 더구나 나는 영어와 담을 쌓은 지 수십 년이다.

시내버스정류소에서 시티투어 버스 정류소를 묻는 외국인들에게 설명을 못하고 있을 때, 재치 있게 안내하는 버스 기사가 있었다. 버스 기사는 일단 타라고 했다. 그리고는 요금을 넣지 말라는 표시로 요금통을 손으로 가린 후에 한참을 가더니 시티투어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서 그들을 내려주었다. 거리가 멀지는 않았지만, 말로 설명하려면 한참을 설명해야 하는 길이었다. 재치가 좋은 버스 기사는 복잡한 말 대신에 그들을 그곳까지 태워다 준 것이다. ‘땡큐’를 연발하며 내린 그 외국인 관광객들의 추억에 부산이 좋은 향기가 나는 곳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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