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초량 이바구길
부산에 여행을 오는 친구들이 물어본다. 어느 곳을 가장 추천하냐고. 첫 번째로 추천하는 곳은 흰여울문화마을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초량 이바구길이라고 말한다. 초량 이바구길을 만난 지 벌써 10년이다. 언제나 똑같이 정겨운 그곳. 해마다 초량을 찾는다.
부산은 피란 도시이다. 피난도 아닌 피란이라는 단어를 부산에서 배웠다. 피난(避難)은 자연재해를 피해 몸을 옮기는 것이고, 피란(避亂)은 전쟁을 피해 옮겨가는 것이다. 부산은 저 멀리 함흥에서부터 밀려 내려온 피란민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비탈길에 천막을 쳤고, 그 천막은 판잣집이 되었고, 판잣집은 다시 벽돌집이 되었다. 비뚤비뚤한 길, 좁은 골목, 집과 집이 엉켜 있어 계획하지 않은 도시의 모습 그대로이다. 부산에는 이런 피란촌들이 많다. 감천문화마을, 아미비석마을, 흰여울문화마을 그리고 초량 이바구길이다. 지금은 부산의 중요한 관광지가 되어 많은 인파가 붐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바로 부산을 임시수도로 정하고 경남도지사 관사를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도지사 관저는 서양과 일본의 특징을 살려 만들어진 건물로 지금 <임시수도기념관>이 되어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다.
초량 이바구길의 시작은 초량초등학교이다. 부산에 유명연예인이 많지만, 이경규, 나훈아, 박칼린 등 한국 연예사의 역사 같은 분들이 초량초등학교 출신이다. 초량 이바구길 꼭대기에 오르면 부산역과 부산항과 부산항대교와 바다가 한눈에 시원하게 보인다. 최근에는 <산복도로전시관>이 새로 만들어져 산복도로(산의 중턱에 있는 도로)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내가 처음 초량 이바구길에 갔을 때는 모노레일이 없었다. 부산역에서 시작하여 가파르게 언덕을 걸어서 올라갔다. 그리고 가파른 168계단도 올라야 했다. 유치원생 아이 둘을 데리고 오르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가 좋았을까. 좁은 계단을 오르다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항이 좋았을까.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아이들과 다시 갔을 때는 노약자가 대부분인 주민편의를 위해 168계단 옆으로 모노레일이 설치되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168계단을 단숨에 지나쳤다. 꼭대기에서 바닷바람 한번 쐬고 길을 걷는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장기려 더 나눔센터>이다. 장기려 박사를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다. 장기려 박사는 국민건강보험이 생기기 전에 자영 의료보험 조합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팍팍한 주머니에 병이 들어도 고칠 형편이 안 되자 달마다 소액을 모아 나중에 아프면 쓰게 하자는 것이 장기려 박사의 생각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덕에 병이 나면 싼값에 치료받을 수 있었다. 장기려 박사는 고향이 이북이다. 6·25전쟁 때 남하하여 부산에 뿌리를 내리셨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셨던 분이신데, 그분이 갈 곳이 없자 지인이 마련해 준 단칸방이 이 초량 꼭대기의 집이다. 이제 주인은 없지만, 주인의 뜻을 기리는 장소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평생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던 장기려 박사는 1995년 12월 25일 새벽에 떠나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장기려 박사는 어쩌면 예수님이 진정 바라는 제자가 아니었을까.
세상에는 넘쳐나는 위인들이 많다. 어린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며 그들의 탁월한 점을 본받게 한다. 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정치가, 발명가, 장군 등이 위인전의 주요 주인공들이었으나, 지금은 운동선수, 연예인, 사업가 등등 그 범위가 확대된다. 하지만 과연 유명한 사람이라고 위인이라 해도 될까? 내가 어렸을 때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지만, 막상 내 아이에게 위인전을 읽히려 하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그만한 위치에 오른 것은 맞다. 하지만 철저하게 본인을 위해 산 삶을 존경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생각해 봤다. 장기려 박사와 같은 분이 진정 존경받아야 할 위인이 아닐까? 평생을 무소유로 인간을 위한 의술을 펼치시고 국가로부터 훈장도 받았지만, 특혜를 거부하였다.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웠지만, 정부가 특혜를 주어 만남을 주선하려 하자 거절한 것이다. 물론 나는 장기려 박사처럼 살 용기가 없다. 그저 마음으로만 존경하면서, 그분의 삶을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초량은 장기려 박사를 만날 수 있기에 더 특별하다.
초량을 갈 때마다 찾는 곳이지만, 언제나 <장기려 더 나눔센터>에서는 숙연해진다. 장기려 박사를 만나고 다시 초량 모노레일로 향한다. 올라올 때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왔지만, 내려갈 때는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마다 지붕이 낮은 집들이 그려져 있다. 아이러니다. 팍팍한 삶의 상징이었던 168계단이 이제 관광지의 상징이라니. 계단을 내려오다가 잠시 샛길로 빠져 김민부 전망대로 발걸음을 돌린다. 김민부 시인의 「기다리는 마음」에 평생 가족을 기다렸을 장기려 박사의 마음이 중첩된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 소리 물새 소리에 눈물 흘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