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던 시절은 끝났다. 한때는 오래간만에 들려오는 소식들이 결혼식, 돌잔치였다. 이제 그런 연락을 받을 나이가 지났나 보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전화번호가 울린다. 기쁜 소식도 있지만 간간히 슬픈 소식들이 들려온다. 삼 년 만에 울린 진외가 오촌 이모의 전화번호. 이모는 울면서 셋째 이모가 어젯밤에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팔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랫동안 치매도 있고 건강도 안 좋은데 그런 조부모님을 건너뛰고 아직 오십 대인 이모의 비보였다.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이유가 만 가지였다. 문득 치졸하게 이런저런 만 가지 핑계를 대는 나 자신이 보였다. 핑계가 이유가 되지 않도록 왕복 기차표 먼저 예매했다.
입고 갈 옷을 고르는데, 입을 것이 없다. 나는 아직 조문을 다니기 위해 준비를 할 나이가 아니었나 보다. 옷을 사러 가자니 이미 늦었고, 검정 치마와 흰 블라우스로 정했다. 프릴이 달려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의상학과를 나온 멋쟁이 이모를 배웅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영정사진으로 만나는 이모는 너무 낯선 중년부인이었다. 다른 이모들은 이래저래 한 번씩 보며 살았는데, 셋째 이모는 결혼을 하고 서울로 이사 가면서 통 못 보았다. 이모의 아들들은 어느새 장성하여 나이 많은 이 육촌누나에게 인사를 한다. 부산에서 부천까지 올 거라 생각 못한 이모들은 내게 고마워하고는 이모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 인사가 이모들에게 위로가 되었길.
내려가는 기차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외할머니는 삼촌과 엄마, 그렇게 두 명의 자식만 두었다. 외할머니는 아이를 무척 이뻐했다는데, 그 시대로는 드물게 두 남매만 키웠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한 마을에 사는 사촌들과 친하게 지냈다. 돌아가신 이모와 엄마는 열다섯 살쯤 차이가 난다. 셋째 딸로 태어난 이모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예뻤다. 할머니와 엄마는 갓난아기를 보기 위해 매일 이모네 집에 가셨단다. 이모의 부고를 전하자 엄마는 바로 ‘나랑 할머니가 얼마나 이뻐했는데...’라며 말끝을 잇지 못하신다. 막 태어난 아기는 이름도 없었다. 너무 이쁜 아기는 어느새 ”(갓) 나니 “라는 별명이 생겼고, 오랫동안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불렸다. 나는 이모의 이름이 나니인 줄 알았다. **이라는 진짜 이름을 알았던 때는 아마 이모가 결혼할 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는 이모네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이미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나니이모보다는 다섯 살 차이인 넷째 이모와 세 살 차이인 막둥이 삼촌이 나와 놀아줬다. 촌수로 오촌이라지만 삼촌이나 사촌사이처럼 가깝게 지냈다. 오촌이라고, 본 지 오래되었다고 갈까 말까 망설이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예전의 나는 직접 조문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다. 친구들과 동떨어져 부산에 살다 보니 먼 거리가 좋은 핑계가 되었다. 단체문자 보내듯 받은 조문연락에 그와 나의 관계를 따졌다. 갈까 말까, 조의금은 얼마 낼까... 교통비까지 합쳐서 조의금을 보내면 좋은 타협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뒤에 깨달았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최근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일 년 사이에 연달아 보내드렸다. 조문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나였기에 전화번호부를 두고 연락할까 말까 친구들을 나누었다. 나름의 친분과 거리를 우선으로 두고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연락했다. 그런데 건너 건너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들이 소리도 없이 서울에서 전주까지 찾아와 나를 위로해 줬다. 미안함과 고마움에 울었다. 그들이 두드려주는 토닥토닥 손길과 꼭 잡아주는 두 손에 큰 위로를 받았다. 오지는 못하지만 건너 건너 조의금을 보내준 이들도 많았다. 내가 헛살지 않았음에 고마웠고, 과연 나는 그들이 위로가 필요할 때 바로 갔을까 생각했다. 큰 일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뒤로 조문에 적극적이기로 마음먹었다. 이모의 장례식은 그 뒤로 생긴 첫 번째 장례식이었다. 예전의 습성으로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빨리 결정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
이모는 내가 이십여 년을 못 보았지만 나의 이모였고 마땅히 이모 가는 길에 꽃 한 송이 올려야 했다. 떠난 이모를 뵙고, 남은 이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장마철이라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다행히 내일은 비소식이 없다. 우리 이쁜 나니 이모 가는 길에 햇빛이 안내하면 좋겠다.
잘 가요. 나니 이모.
하늘나라의 꽃밭에서 예쁜 꽃이 되길 바래요.
2023.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