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향기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동네

by 방수미

친정에 다녀왔다.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동네를 산책했다. 내가 기억하는 이래 큰 변화가 없는 곳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돌다 보니 초등학교 가는 길로 걷게 되고 어린 시절에 다니던 문구점도 보였다. 그 길에는 만화책을 빌려 읽던 만화방도 있다. 학교-집-학교-집. 순정 만화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지내던 학창 시절의 유일한 일탈이고 행복이었다. 지금은 빈 가게인지 아무런 표시가 없다. 문득 그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

우리 동네는 우리 市에서도 가장 변화가 없는 곳이다. 지금의 모습은 3~40년 남짓 그대로 머무르고 있다. 어쩌면 내 기억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변두리. 이곳은 발전할 기미가 전혀 없다. 발전. 한때는 그 말이 멋있었다. 사람들의 삶터를 개선하는 것이라 여겼다. 얼른 우리 동네도 ‘발전’하기를 바랐다. 도시 안에서도 우리 동네만 자꾸 개발에서 비껴나고, 여기저기 다른 곳에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우리 동네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낮은 지붕이 있는 집들, 좁은 골목, 집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집 밖으로 들린다. 우리 동네도 새롭게 바뀌길 바랐다. 우리 집이 아파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언젠가 차례가 되면 발전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도시의 인구는 계속 줄고, 번화가 위주로만 발전한다. 아마도 우리 동네가 ‘발전’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산다. 실용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낮은 것들은 부서지고 사람들은 강제로 이주한다. 누구는 그것을 반기고, 누구는 그것을 반대한다. 처음에는 두꺼비집처럼 헌 집을 가져가고 새집을 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주와 이사로 이웃과 단절된 삶이 새 아파트보다 좋을까. 지천명의 나이가 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고향의 상실. 참으로 서글픈 말이다. 사람들은 점차 기댈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쁘게 벽화로 단장한 낡은 마을을 찾아 시간 여행을 하는가 보다. 자꾸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고향의 상실과 부재는 낮은 출산율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결혼에 대한 계산적인 사회 풍조가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부정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고향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뿌리에 대한 상실이기도 하고 그 뿌리를 이을 자손에 관한 생각의 상실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에는 현재만 있고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젊은이들은 여행과 오락, 즐거움으로 청춘을 불사른다.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나이가 드니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귀소본능이 느껴지고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鄕愁)가 생긴다. 그것은 다른 것들이 채워주지 못한다. 다행히 나에게는 아직 고향이 남아 있다.

딴 길로 샜던 생각을 접고 동네를 계속 산책한다. 옆집 아주머니가 곱게 차려입으시고 교회를 다녀오시나 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니 나를 몰라보신다. 하기야, 20여 년 전에 결혼하여 동네를 떠난 뒤로는 길에서라도 만나 뵌 적이 몇 번 되지 않는다. ‘저 수미예요.’라고 말씀드리니 그때야 반가운 얼굴로 ‘수미냐?’ 하신다. 길에 서서 짧은 안부를 나누고 헤어졌다. 옆집 아주머니의 얼굴은 긴 세월 속에서도 내가 알던 40대의 모습으로만 보였다. 아마도 옆집 아주머니 눈에는 쉰 살의 나도 20대로 보였겠지 싶다.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일이 더 많았다. 낯익은 골목과 내 이름이 나를 들뜨게 한다. 동네는 그 속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내 이름도 찾아주었다. 여기는 아직 수미네 동네였다. 그동안은 동네에 변화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제는 내가 아는 그대로여서 좋다. 발걸음을 뗀 김에 초등학교까지 걸었다. 그때는 그 길이 굉장히 길어 보였는데, 어른의 발걸음으로 가니 금세 도착한다. 초등학교만이 유일하게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니다. 새롭고 이쁜 건물로 단장을 했고,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도 있다. 그랬지. 우리 초등학교는 내가 다니던 시절에도 축구로 유명했다. 잠시 나는 양쪽 어깨에 빨간 책가방을 맨 소녀가 되어 담장 없는 학교를 걸었다.


공간(空間, space)은 비어있는 곳이고, 장소(場所, place)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이란다. 젊은 시절에는 곳간을 채우듯 빈 곳을 채우는 것이 좋아서 공간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공간보다 낯익은 장소에 가는 것이 좋다. 그 길에 서 있으면 그때의 내가 보인다. 골목에서 친구들과 손야구를 하는 어린 나, 하굣길에 친구와 핫도그를 먹으며 재잘재잘 수다 떠는 고등학생인 나, 휴대전화는 물론 삐삐도 없던 시절에 약속한 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풋풋한 젊은이인 나. 내가 공간에 채색하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 장소에 빛바랜 향수만 남았다. 추억할 것이 많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뒤를 돌아보니 장소는 내가 걸어온 길이고, 나의 자화상이다.

6월의 날씨는 산책하기 딱 좋다.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나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걷는다. 옛날 동네처럼 미로 같은 골목들은 없지만,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산책로가 잘 되어 있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여름에는 신록이 푸르고, 가을에는 곱게 단풍이 물든다. 오래된 신도시는 굵은 나무가 있어서 좋다. 그래서 우리 동네의 새로 지어진 이름이 그린시티이다. 춘천을 따라 장산 대천공원까지 걷는다. 춘천에 수달이 사는가 보다. 조용히 해달라는 팻말이 보인다. 살포시 걸으니 춘천에 흐르는 물소리만 졸졸 들린다. 걷던 걸음을 멈춘다. 초록이 깊어지는 산책로의 사진을 찍고 날짜를 써넣는다. 지금 걷는 이 길이 나에게 또 다른 향기를 품은 나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 새로운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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