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노래를 들으며 생각하는 것들
선운사 동백꽃이 아름답다는 소문에 고창에 왔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은 그 자체가 장관이다. 누구는 핏빛 느낌이라고 하고, 누구는 눈물 같다고 한다. 선운사에 동백꽃을 보러 온 이유는 가수 송창식 님 때문이다. 송창식 님의 노래 「선운사」가 내 귀를 붙들어 맸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하략>
노래 「선운사」는 송창식 님이 1986년에 발매한 앨범에 들어있다. 유명한 노래지만, 나는 이 노래를 올해 처음 들었다. 올 초에 내가 살던 도시의 구(區) 문화회관에서 송창식 님의 공연이 있었다. 송창식 님의 노래를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공연에 갔다. 일흔일곱의 나이셨지만, 송창식 님이 보여준 것은 열정 그 자체였다. 그는 1968년 데뷔한 이래, 아니면 기타를 처음 배운 이래 여전히 빠른 손놀림을 유지하고 있었다. 송창식 님의 공연에서 노랫말을 듣고 있는데, 가슴속에서 무언가 뭉클했다. 뒤쪽 어디에선가는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남편을 보니 귀를 활짝 열고 송창식 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공연 프로그램에는 없었지만, 즉석에서 추천곡으로 나온 곡이 「선운사」였다. 송창식 님은 주저 없이 기타를 치며 「선운사」를 불렀다. 그때의 감동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노래를 찾아 듣고 따라 불렀다.
선운사에 갔다. 빨간 동백이 떨어질 때. 4월의 동백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동백꽃은 꽃봉오리가 단아하고 금가루처럼 노란 수술과 진홍색의 꽃잎이 잘 어울린다. 나무 위에도 동백이 달려 있었고, 땅 위에도 동백이 붙어 있었다. 꽃잎 한 장 한 장 떨어지거나 가지에 매달린 채 그대로 시드는 꽃에 비해 봉우리째 떨어지는 동백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보통은 붉은 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한다는데, 송창식 님은 눈물로 비유했다. 떠나려는 누구를 붙잡으려 만들 노래인지 청아한 목소리와 다르게 가사는 서글프다. 선운사에 가보니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의 배경을 도솔산 선운사로 했는지 알겠다. 부산 동백섬, 여수 동백섬, 거제 지심도를 가보았지만, 가장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곳은 고창 선운사이다. ‘설화’에는 백제 시대에 선운사가 창건될 때부터 동백나무 숲이 있었다고 하고, ‘역사’에는 조선 성종이 대웅전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려고 일부러 조성했다고 한다. 햇볕 한 줌 들지 못할 만큼 빽빽한 선운사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울타리 밖에서만 바라볼 수 있다. 동백나무숲이 대웅전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열두 폭의 병풍 같기도 하고 수호 나무 같기도 하다.
「선운사」를 듣다 보니 송창식 님의 노래에 그 오랜 세월 관심이 없었던 시간이 아쉽다. 7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는 7080 노래가 촌스러웠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나와 고즈넉하게 가사를 읊조리는 가수들보다 ‘난 알아요’를 외치며 현란한 춤을 추는 90년대 가수에 빠졌었다. 스스로 신세대라 여겼고, 그 이전의 음악은 구식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노랫말보다 이미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돌 틈 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다시 7080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음악 시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아름다운 가삿말을 들으면서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변화이다. 아름다운 가사를 읊조리며 그 의미를 찾는 일이 더 즐거워졌다. 「선운사」를 들으면 선운사에 가고 싶고, 「여수 밤바다」를 들으면 여수를 찾고 싶다. 희로애락을 대놓고 드러내는 노래들보다 살짝 숨긴 노래들이 좋아졌다. 노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입맛도 변했다. 예전에 그토록 입에 달고 살던 짜고 달고 맵던 음식보다는 담백한 음식이 좋다. 밥상에 나물은 꼭 있어야 하고 식당도 나물 반찬이 맛깔스럽게 나오는 곳을 선호한다. 담백한 가사와 가지런한 맛이 주는 여운이 좋다. 화려한 음색과 자극적인 맛을 좋아했던 때가 거짓은 아니리. 그때는 젊었고, 그런 것이 좋았다. 지금은 반백 년을 살아보니 세포가 느려졌나 보다. 느림의 미학이 좋은 나이가 되었다. 반대로 바뀐 것도 있다. 젊었을 때는 무엇을 입어도 이뻤을 때이니, 청바지에 면티 하나면 충분했다. 은은하거나 단색의 의상을 입었다. 간혹 특별한 날을 위해 화려한 무늬의 옷이 한두 개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체로 옷에 꽃무늬가 있거나 진한 색이 가득하다. 입술도 빨갛게 바른다. 친정어머니의 옷도 내 옷과 비슷한 패턴들의 모음이다. 속설에 나이가 들면 꽃무늬가 좋고 화려한 색깔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이제 내가 그런 옷들을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다. 청춘이 무기인 시대가 지나고 마음만이 청춘이다. 노란색 바탕에 앞코에 반짝이는 큐빅이 가득한 새 구두를 보고 딸이 너무 눈에 띈다고 말한다. 그저 웃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아마 너도 엄마 나이가 되면 이런 신발을 신을 거야.’ 외유내강(外柔內剛 겉은 부드럽고 속은 강하다)이 아니고 내순외화(內純外華 속은 순수하고 겉은 화려하다)라는 말을 만들어본다.
나이가 들어감을 반갑게 맞이하기로 했다. 이제 바쁘게 살 이유도 없다. 심장이 느리게 뛰는 만큼 오래 보고 천천히 본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하기보다 사물 속에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재미있는 것이 좋지만, 재미있는 것만 따라다니지는 않는다. 오히려 재미없는 것에서 재미를 찾는 재미가 있다. 40대만 해도 젊은 척, 아직 왕성한 척했었다. 단지 숫자 하나가 더해져 앞자리가 바뀌었을 뿐인데, 마치 인생이 바뀐 것 같다.
선운사 동백나무 숲에서 바닥에 촘촘하게 떨어진 동백꽃을 보며 생각한다.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철에 빨간 동백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가 온갖 꽃들이 피는 봄에 후두둑 떨어져 여왕 자리를 양보한다. 그렇게 동백은 마치 봄의 여신에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것처럼 화려한 꽃길을 만든다. 모든 것은 흥행과 쇠퇴가 있기 마련이다. 세대가 바뀔 때 양보의 미학을 동백꽃에게 배운다. 선운사의 동백꽃은 노래를 넘어 나에게 교훈을 준다. 그것이 억지스러운 해석일지라도 해석이 많으면 즐거움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