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토마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방울토마토와 눈이 마주친다. 얼마 전에 사서 먹고 남은 것을 깜빡 잊었다. 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손이 가지 않는다. 방울토마토를 외면하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우리 집 냉장고의 과일 칸은 대체로 비어있다. 과일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수박과 복숭아, 가을에는 사과, 겨울에는 귤만 조금 먹는다. 나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채소류로 분류되는 토마토는 더 싫어한다. 세끼 밥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과일을 먹는 시간은 사치와 낭비 같았다. 남편도 과일을 즐겨 먹지 않는다. 이런 부모 아래 있는 아이들도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 과일을 먹어야 하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나로서는 다행이다. 그동안은 과일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오늘 방울토마토와 눈이 마주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일의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맛이 없어서 안 먹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와 남편은 과일에 있어서 교집합인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신다. 키도 크고 힘도 좋고 순발력도 좋은 친정어머니는 최고의 일꾼이었다. 친정어머니는 쌀가마니도 척척 지는 등 장정 이상의 몫을 하셨다. 집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던 다른 엄마들과 다르게 친정어머니는 밤낮으로 일하셨다. 부모님이 개미처럼 억척스러운 근면함을 가진 덕분에 삼 남매는 부족함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전기밥통에 밥을 해놓고, 반찬을 찬통에 담아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우리 삼 남매는 그 밥과 반찬을 스스로 챙겨 먹어야 했다. 과일도 냉장고 한켠에 있었지만, 손에 칼이 낯설어 우리는 과일까지 먹지 못했다. 입맛이 발달해가는 청소년기에 밥의 단맛은 배었지만, 과일의 단맛은 내 것이 되지 못했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시어머니는 소문난 일꾼이었다. 밭이 많았던 시댁 동네에는 할 일이 많았다. 시어머니는 새벽부터 단출한 주먹밥을 준비하신 후 밭으로 일하러 다니셨다고 한다. 아마도 남편은 누나가 차려주는 밥을 먹거나 아니면 스스로 챙겨 먹어야 했을 것이다. 남편도 과일의 단맛을 알기 전에 어른이 되어버렸나 보다.
그런 나에게도 일생에 과일을 가장 많이 먹었을 때가 있었다. 어떤 5월에 딸기를 샀다. 딸기 철이 끝나가고 있었는데 먹고 싶었다. 손님용으로 준비한 것도 아니고 ‘내’가 먹기 위해 딸기를 사 오자 남편이 놀랐다. 자꾸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그냥 먹고 싶었다고 말하고 나서 며칠 후에서야 아이를 품었음을 알았고, 딸기같이 이쁜 공주라 상상했다. 그전에는 여름 통통 털어 수박 한 통 먹기를 버거워했는데, 수박이 냉장고에서 떨어지지 않고, 참외는 껍질만 까서 앞니로 쓱쓱 베어 먹었다. 짧은 입덧을 한 후 과일을 계속 먹었다. 임신의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이제 드디어 나도 과일이 맛있어졌나보다 생각했었는데, 출산과 동시에 과일은 다시 멀어졌다. 지금은 제철과일이니 한번은 먹어줘야지 하는 의무감만 있을 뿐 지금도 과일을 자주 사지 않는다.
(요즘은 채소로 분류하지만) 토마토가 싫은 이유는 명확했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 근처에 강이 흐르고 오래된 둑이 있었는데, 물이 많이 필요한 토마토를 재배하기 아주 좋은 곳이었다. 봄만 되면 집마다 여기저기에서 수확해서 나눠 준 토마토가 흔했다. 토마토는 맛도 없었을 뿐 아니라 쉽게 물러지기에 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존재였다. 엄마가 비스듬하게 썰어 설탕을 듬뿍 뿌려주면 설탕 맛으로 먹었던 것이 토마토이다. 늦봄이 되면 토마토에 치이는 기분이었다.
영양소가 많은 토마토가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다. 서양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토마토가 익으면 의사의 얼굴은 파랗게 변한다.’ 그만큼 토마토는 건강에 아주 좋은 음식이다. 생으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으면 더 좋은 토마토. 가끔 샐러드나 파스타를 만들 때 곁들이려고 방울토마토를 산다. 마트에 진열된 큼직한 토마토를 볼 때마다 토마토를 들고 뾰로통하게 서 있는 어린 내가 보인다. 또 비 오는 날이면 둑이 넘쳐 학교에 오지 못하는 ‘이띠기’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모습도 있다. 그곳은 만경강에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 옛둑이 있었던 지라 옛뚝이, 예뚜기, 이뜨기, 이띠기로 이름이 변해갔다. 그래서 누구는 예뚜기라고 하고 또 누구는 이띠기라고 한다. 나는 이띠기라고 불렀다. 지금은 동네 방언처럼 만들어진 재미있는 이름은 사라지고 ‘옛뚝마을’이 정식 명칭이다.
과일의 단맛을 생각하다 보니 과일을 더 많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먹다 보면 맛있는 맛을 알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 과일의 단맛을 갖게 해줘야 할 것 같아서다. 이것은 새로운 책임감이다. 그동안은 선물로 과일이라도 한 상자가 들어오면 난감했었다. 이웃들 나눠주기도 하고 할당량을 채우듯이 가족의 양을 정해서 먹게 했다. 맛있고 기쁘게 먹지 않으니 과일이 더 맛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식사를 마친 후 과일을 앞에 두고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면 과일이 이야기들을 연결해줄 수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바쁜 일상과 스마트폰을 보는 것으로 휴식을 대체하는 시대에는 더욱 대화가 필요하다. 과일의 단맛이 가족에게 달콤함을 줄 것이다.
우리 동네 과일가게마다 제철인 양 입구에 내놓은 것이 짭짜리토마토이다. 과일가게에서 토마토가 먼저 보이는 것을 보면, 머리로는 채소로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토마토가 나에게는 과일인가보다. 짭짜리토마토는 낙동강과 남해가 교차하는 부산의 대저에서 재배된다. 바다의 짠물이 토양에 적절하게 배어 있어서 토마토가 짭짤하다. 토마토도 싫고 토마토를 먹으려면 설탕이라도 듬뿍 뿌려 먹어야 했던 나로서는 아주 신기한 토마토이다. 재배면적이 협소해 짭짜리토마토는 다른 토마토보다 비싸고, 또 이름만 짭짜리토마토인 것도 많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가까이에 토마토 재배지가 있어서 토마토는 나와 떼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인가보다.
내일은 과일을 사러 가야겠다. 과일가게에는 아직 딸기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데, 딸기가 들어가기 전에 5월의 딸기를 먹으련다. 딸기를 통해 과일의 단맛을 다시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