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간지 <여기> 58호
딸이 손톱을 깎는다. 스스로 손톱을 깎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십삼 년 동안 아이의 손톱은 항상 내가 깎아 주었다. 아이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딸이 벌써 다 컸구나’ 느낀다. 엄마 껌딱지로 모든 일에 엄마를 찾곤 했었는데, 점차 내 품을 조금씩 떠나고 있다. 편해졌다는 마음보다 허전한 감정이 먼저 든다.
연년생 남매를 키우면서 반복되는 육아에 지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언제 커서 이런 일들을 스스로 할까 생각했다. 엄마 손이 많이 필요했다. 항상 아이들은 껌딱지처럼 옆구리에 하나씩 붙어 있었다. 나에게도 쉼이 필요했지만, 쉽지 않았다. 둘이 함께 잘 놀다가도 엄마를 찾는다. 그럴 때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오래오래 내 품 안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영원한 엄마 껌딱지일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첫 딸이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자유학년제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온갖 즐거움을 누린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철저한 준비 속에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현장 체험학습을 갈 때 목적지까지 아이들 스스로 가야 한다. 선생님들은 도착지 지하철역부터 곳곳에 계시며 아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신다.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것은 학생들의 중요 임무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심정이었으나, 생각보다 딸은 스스로 잘 다녔다. 학교 안에서 줄지어 출발하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차이에 새삼 놀란다. 한 뼘 커진 키만큼 마음도 한 뼘 커졌다. 아이는 많은 것에서 독립을 시도한다.
딸은 중학생이 되더니 잠자리를 독립했다. 십삼 년 동안 한 이부자리를 덮고 자던 아이였다. 아이는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가 좋다며 불러달라고 했었다.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딸은 갑자기 자기만의 잠자리를 찾았다. ‘설마, 그렇게 쉽게 엄마랑 떨어질까’ 생각했는데, 아이는 그 뒤로 안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장난감이 가득한 방에서 뽀로로 매트에 이불을 깔고 덮고 그렇게 잤다. 아침이면 이부자리를 깔끔하게 개고 나온다. 딸의 첫 번째 독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서운했던 내 마음은 약속한 침대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한번은 엄마 품이 그리워 안방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는 꿋꿋하다. 결국 석 달 동안 미루던 침대를 들이던 날, 딸의 잠자리 독립을 인정했다. 딸의 방은 이제 청소년에 어울리는 방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모아 온 장난감을 이제야 정리했다. 옷장에는 교복이 걸리고 책상이 놓였다. 방은 언제나 깔끔하다. 나의 손이 전혀 필요가 없다. 딸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나만 과거를 붙잡으려 했나 보다. 아이에게 불러주던 ‘섬집아기’는 이제 듣는 이가 없고, 토닥토닥해 주던 내 팔은 할 일이 없다. 마음 한쪽에 허전이 쌓인다.
딸은 매일 자란다. 키도 쑥쑥 자라고, 말도 자란다. 이제 어린이에게 볼 수 없는 성숙함이 있다. 가끔은 친구처럼 느껴진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 속에서 가끔은 어린아이로 보다가는 당황하는 일이 생긴다. 교우관계에서 노파심에 한마디 거들다가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에 할 말을 잊는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아직은 내 품에 있다고 여기고 싶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청소년 전문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부모를 유람선에 비유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편안하고 안전한 유람선도 좋지만, 아이는 보트를 타고 거센 파도를 즐기기를 원한다고 조언했다. 가끔은 보트보다 더 위험한 뗏목을 타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들은 한바탕 짜릿한 파도와 위험한 파도를 동시에 겪은 후에 다시 유람선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단다.
이 말을 듣다 보니 어렸을 적에 텔레비전에서 보던 『빨간 머리 앤』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앤과 친구들은 냇가에 있는 보트를 보고 죽음에 잠든 공주 역할 놀이를 한다. 앤은 백합 공주 일레인이 되어 보트에 죽은 척 누워 있고, 친구들이 배를 떠나보낸다. 그러나 그 보트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이내 배는 침몰한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길버트가 앤을 구해주지만, 친구들은 앤이 진짜로 죽은 줄 알고 대성통곡하다가 살아있는 앤을 보고 다시 기뻐하며 웃는다. 보트에 탄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이렇게 모험을 즐기고 이겨낸 위험에 웃는다. 아이들이 여러 가지 체험을 하도록 도왔지만, 안전을 이유로 많은 걸 제약하는 엄마였다. 이제 아이들이 인생이라는 대양을 항해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유를 주어야겠다. 위험한 순간에 맞닥뜨리기도 하겠지만 그런 실패와 극복의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성장해 가리라 믿는다.
깔끔해진 딸의 손톱을 보며 서운한 감정을 내려놓고 다른 희망을 찾았다. 아이가 더 자라면 같이 네일아트를 받으러 다녀야겠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본 횟수는 손으로 꼽지만, 딸과 함께라면 그 시간이 즐거울 것 같다. 딸에게 잘 깎았다고 칭찬한다. 이제 앞서가는 보호자보다는 옆에서 같이 가는 동행자를 꿈꾸며 딸의 눈에 윙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