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지평이 확대되다

Zoom 접속

by 방수미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호메로스처럼 무사 여신에게 탄원하고 『오뒷세이아』 강의를 시작한다. 오늘이 다섯 번째 마지막 날이다. 지난 봄부터 내용을 분석하려고 책에 코를 파묻었고, PPT 파일로 시청각자료를 만드느라 노트북에 눈을 쏟아부었다. 가끔은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렇게 두 계절에 걸쳐 끝내니 내 손에 『오뒷세이아』가 온전히 남았다.


10여 년 전부터 그리스 고전을 배웠다. 처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만나면서부터 고전에 빠져들었다. 이 책을 다른 사람들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주변에서 친구들을 모아 해설을 시작했다. 해설하기 위해 더 공부했다. 그냥 혼자 책을 펴놓고 읽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다음 해에는 지역 인터넷 카페에서 회원을 모아서 15주 동안 구절구절 자세히 읽었다. 계획대로라면 해마다 그렇게 일리아스를 주변에 널리 알렸을 것이다. 코로나 19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희대의 역병이 창궐해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편해지자, 일리아스를 함께 읽은 1~2기를 모아 그리스 고전을 더 깊숙이 파기 시작했다. 고전은 넓이의 확대도 좋지만, 깊이의 확장도 좋다. 2020년에는 같이 고전을 배우던 남편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9강으로 강의했고, 집합 금지가 심해진 2021년에는 내가 일리아스를 일곱 개의 주제로 나눠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zoom을 통해 강의했다. 텍스트대로 차례차례 읽는 것과 달리 주제별로 정리하려면 일리아스를 통으로 알아야 했는데, 다행히 무사 여신의 도움으로 잘 마쳤다. 2022년에는 느슨해진 코로나 덕분에 지역 인터넷 카페에서 3기 회원을 모집하여 다시 읽었다. 그들과 마지막 수업을 한 후, 식사하다가 ‘내년에는 오뒷세이아를 더 자세히 공부하려고요.’라고 했더니 다들 책을 미리 준비한단다. 그때 김헌 교수의 『천년의 수업』을 읽고 있었고, 마침 그때 보던 구절이 오뒷세우스라서 『오뒷세이아』를 제대로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입으로 나온 말 한마디가 즐거움도 되고 의무도 되어 봄부터 『오뒷세이아』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부한 내용을 일리아스 1~2기에게 이번 여름에 zoom으로 강의했다. 3기는 가을에 대면으로 강의하기로 했다.

『오뒷세이아』를 덮었을 때, 나에게 남은 것은 경이로움과 호메로스에 대한 찬사였다. 학자들도 『일리아스』에 대해서는 인간의 운명과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였다며 대단히 높이 평가하지만, 『오뒷세이아』에서 대해서는 오뒷세우스의 모험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성장,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내용 정도로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일리아스』가 인간의 본성을 노래했다면 『오뒷세이아』는 인간의 심리를 자세하게 분석하고 묘사한다. 뜯어보면 모든 구절이 인간의 심리와 연결되어 있다. 어느 순간 이 점을 발견하고 나는 심장이 터질 뻔했다. 내가 깨달은 것들을 알려주었고, 강의를 들은 이들의 좋은 반응에 행복함이 넘쳤다. 다섯 번의 목요일이 행복했고, 이제 여름을 밝혀준 zoom을 off 한다.

코로나19는 모든 사람의 생활을 바꾸었다.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는 무서운 역병으로 주변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곧잘 있다. 지금은 전염병으로 지위가 하락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코로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본다면, 위생에 대한 개념이 철저해졌고, 디지털기기의 사용이 쉬워졌다. 그중의 하나가 zoom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보던 화상회의가 일반화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집에서 강의를 할 수 있다. zoom이 있어서 아이들도 학습 공백을 최소화하고 코로나19 시국에도 수업받았다. 확진자 한 명만 나와도 반 전체가 자가격리가 되던 2021년에, 아들 반에서 확진자가 두 명이 나오자 선생님을 포함하여 모든 아이가 자가격리가 되었다. 오프라인 교실 수업은 바로 온라인 zoom으로 변경되어 각자의 집에서, 심지어 치료시설에서 격리되던 아이들까지 십여 일간 수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럴 때 IT 강국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나도 zoom이 없었다면 그리스 고전을 나누는 것이 중단되었을 텐데, zoom을 통하여 강의하면서 내가 가진 일리아스를 더 확장하거나 더 나눌 수가 있었다. 더 좋은 것은 zoom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의 불편-40분 강의, 10분 강제 휴식-을 감수한다면 zoom은 굉장히 이로운 온라인 세상이다.


다행히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디지털 세상에도 한발 걸쳤다. 그러나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이라 여전히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며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강의하는 것이 좋다. zoom은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PPT도 만들어야 하고, 모니터를 보고 있기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도 이렇게 언제든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나눔의 끈을 이어갈 수 있기에 zoom에 감사하다. 내년 여름에는 무엇을 주제로 zoom을 on 할까. 책장에 꽂힌 그리스-로마 고전을 보며 다음의 zoom을 생각한다.


지나가는 말>

데카르트의 동상 아래 새겨진 글귀를 보고 코로나19 시대에 살고 있는 아들이 이렇게 읽었다.

“코로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선생이 저승에서 벌떡 일어나 예언력을 발휘했다고 좋아할는지, 아니면 어린이의 귀여움에 깔깔 웃을지는 몰라도,

코로나 시대에 사는 아이의 눈에는 ‘고로 나’가 ‘코로나’로 읽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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