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캠핑장에서
그날은 금계국이 황금처럼 피어있던 유월이었다. 꼬꼬마 아이들은 금계국 사이로 다니며 신났다. 햇살은 눈 부시고 바다는 푸르고 맛있는 연기는 피어올랐다. 노지 캠프장에서 우리의 첫 캠핑이 시작되었다.
소문에, 부산 기장 바닷가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단다. 그동안 나는 캠핑이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남편은 그곳이 집과 가까우니 불편하면 바로 돌아오면 되니까 시도해 보자고 했다.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자칼이라는 상표의 텐트가 있었다. 친정집에서 사놓고 쓰지 않던 유물같이 오래된 텐트를 결혼 전부터 혼자 산으로 야영을 다니던 남편이 우리 집에 가져왔던 참이다. 남편은 나를 설득했고 나는 못 이기는 척 설득당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노지 캠프장의 빈자리에 텐트를 쳤다. 궁전 같은 텐트 중에 우리 텐트는 색까지 바랜 녹색이라 마치 궁전들을 수호하는 오두막 같았다.
캠핑은 기대 이상이었다. 여러 텐트가 구역 없이 다닥다닥 붙었지만 서로 조심하여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위험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텐트를 치는 동안 모험을 떠났다. 엄마·아빠에게서 멀어져 산책로를 걸으며 꽃도 구경하고 바닷가에도 내려가 발도 담근다. 평소라면 내 옆에 끼고 다녔겠지만, 그날은 자유롭게 두었다. 일단 우리 텐트에서 아이들 동선이 다 보여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텐트를 치고 숯불에 양고기를 구웠다. 우리 가족은 양고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냄새와 연기가 많이 나 집에서 해 먹기 불편해서 잘 먹지 못한 음식이다. 숯불에 노릇노릇 익은 양고기는 진정한 불맛이었다. 그 뒤로 나는 캠핑에 빠졌다. 사설 오토캠프장은 모든 것이 다 갖춰져서 편리했다. 노지 캠프장은 공용화장실밖에 없어서 모든 것을 다 정리한 후 집에 가지고 와야 했다. 사설 캠프장은 깨끗하고 구역이 나뉘어 있어서 적당한 내 땅도 있다. 아이들은 숯불 피우는 옆에서 나뭇가지 몇 가닥에 불을 피우고 캠프파이어 놀이를 한다.
캠핑이 좋은 이유는 흙을 밟고 자연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밟는 땅은 흙이 아니다. 시멘트 길을 밟는다. 흙이라고는 한 줌도 없다. 공원도 잔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산책로 외의 길은 입장이 제한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골목의 단단한 땅에 금을 그으며 놀았다. 막자 맞추기. 땅따먹기, 팔방 게임 등등 수시로 바뀌는 금에 따라 놀이도 바뀌고 재미는 더해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내가 놀던 그 땅도 어느새 시멘트로 덮인 골목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항상 자연이 아쉬웠는데, 어쩌다 한 번이라도 이렇게 땅을 실컷 밟고 놀 수 있으니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해마다 두세 차례 캠핑을 떠난다. 캠핑은 호텔 여행에 비하면 너무 불편하다. 하지만 호텔의 시간보다 캠핑의 시간은 더 흥미진진하게 흐른다. 흙도 밟고, 계곡에서도 놀고, 숯불에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는 시간은 캠핑에서만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다. 아이들도 자라면서 자기 몫의 일을 한다. 둘이 치던 텐트를 넷이 치게 되면서 텐트 치는 시간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후다닥 텐트를 치고 계곡을 찾는다. 한여름의 더위를 시원한 계곡에서 날린 후 잠시 캠핑 의자에 앉아 보드게임을 한다. 옷이 마를세라 다시 한바탕 계곡에 몸을 던진다. 불이 모두 꺼진 뒤에는 별이 반짝 빛난다. 캠프장의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의 잔치이다. 땅과 나무와 하늘을 오롯이 만날 수 있는 것이 캠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캠핑을 떠난다. 계곡에 있는 휴양림 캠프장을 예약했다. 출발하면서 그리스신화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진심 반 재미 반으로 여행자의 신인 헤르메스에게 인사를 했다. 숯불에 구워 먹을 고기를 듬뿍 사서 마음이 즐거웠다. 오래간만의 야외 숯불구이이다. 갑자기 무언가 빠뜨린 기분에 휴양림에서 보내준 문자를 자세히 보니 휴양림이라 숯불과 모닥불이 금지란다. 자세히 읽지 않은 내 탓이다. 머리가 하얘졌지만, 일단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인근 읍내 시장에 가서 프라이팬을 샀다. 우리가 읍내라도 지날 때 알아서 다행이다. 여행자의 신이 도와주었나 보다. 도착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텐트를 치고 물 좋은 계곡에 놀러 갔다. 적당한 깊이에 시원한 물은 휴양림까지 오느라 고생한 우리에게 쾌적한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 신나게 놀고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숯불만큼은 아니지만 고기는 항상 맛있다. 오늘의 메뉴도 역시 양고기이다. 양고기에 칭다오 맥주. 한 편의 광고가 크게 히트한 이후에 양고기와 칭다오는 친구처럼 따라다닌다.
익어가는 밤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찍 꺼진 불빛에 우리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믐쯤이라 하늘의 별이 더 반짝인다. 밤하늘의 별을 따서 알전구에 알알이 박았더니 하늘의 별이 우리 텐트에도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알전구에 캠핑의 하루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