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앞 포장마차
늦은 밤 기차에서 내려 따뜻하게 먹는 잔치국수는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나와 아빠도 끈끈하게 이어준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수를 보면 고향의 아빠가 생각난다.
서울로 대학원을 다녔다. 화요일/목요일 수업이라 화요일에 올라가서 수업을 듣고 친구 집에 머물다가 목요일 저녁 수업까지 마치고 저녁 9시 5분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 고속열차도 없고 가장 빠른 열차가 새마을호이던 시절이라 익산역에 도착하면 밤 12시다. 늦은 밤에 도착하는 딸을 위해 아빠는 항상 역에 와서 기다리셨다. 택시를 타고 가도 될 텐데, 농사일에 바쁘고 힘드실 텐데…. 꼭 마중을 나와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맞이방으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저 멀리에서부터 아빠의 하얀 이가 보석처럼 빛나서 아빠가 손을 흔들기도 전에 나는 아빠를 찾을 수 있었다. 아빠는 나를 바로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역 앞에 즐비한 포장마차에 가서 잔치국수를 사주셨다. 지치고 배고픈 밤에 먹는 국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매주 목요일 밤이면 아빠와 국수 데이트를 했다. 기차역 앞의 포장마차는 두 계절의 즐거운 추억만을 남겨주고 어느 날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기차역에서 포장마차가 사라지자, 내 머리에서도 포장마차와 국수는 잊혔다.
아버지와 추억이 담긴 국수가 다시 소환된 것은 작년에 글쓰기를 배울 때였다. 그날 주제는 ‘편지’였다. 앞서 ‘나의 근원’에 대한 소재가 엄마였기에 편지는 당연히 아빠의 몫이었다.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남편에게도 연애편지를 써 보내곤 했는데,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는 처음이었다. 어떤 내용으로 지면을 채울까 고민만 이어졌다. 발표를 위해 쓰는 수필이지만 아빠에게 편지봉투에 넣어 편지처럼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때 읽고 있던 책이 『남성여중 구세주』였다. 내가 익산 남성여중을 졸업했기에 옛 생각을 하며 재미나게 보고 있었다. 청소년소설의 결말이 그렇듯, 주인공은 여러 위기를 겪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진 덕에 좋은 성인으로 성장한다. 책을 읽다 보니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아빠가 시간만 되면 나를 데리러 오시곤 하던 게 생각이 났다. 이미 빡빡하게 채워진 통학버스를 타면 삼십 분을 서서 가야 할 텐데, 아빠 차를 타고 가면 편안하게 앉아서 십 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통학버스를 타러 가다가 아빠 차가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빠가 익산역으로 마중 나와서 함께 국수를 먹던 즐거운 추억과 딸을 데리러 차를 몰고 학교로 오시던 아빠의 사랑을 주제로 편지글 형식의 수필을 썼다. 어버이날에 맞춰 엄마·아빠에게 두 편의 글을 보내드리니 아빠는 너무 좋아 가끔 내 편지를 꺼내 보시며 고단한 하루를 웃음으로 마치신다고 기뻐하신다. 내가 글쓰기를 배워서 처음 얻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빠와 같이 기차역 앞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고 싶어졌다. 지금은 그 자리가 주차장이 되었지만, 살짝 근처를 벗어나면 포장마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하지만 없었다. 친정에 갔을 때 차로 한 바퀴 돌아보려 생각도 했지만, 짧은 친정 나들이에 잊어버리고 항상 지나쳤다.
팔월 초에 아이들과 서울을 다녀왔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서울도 둘러보고, 오래간만에 아이들 친구들도 보기로 계획했다. 여행을 마치고 부산역에 도착할 시간에 남편이 데리러 오기로 했다. 갑자기, 부산역에 포장마차가 있다고 들은 생각이 나면서 국수를 먹고 싶어졌다. 검색해 보니 몇 개의 포장마차가 있다. 아니 바퀴가 없으니 포장집이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라도 추억을 살릴 수 있어서 기대되었다. 남편에게는 차를 두고 지하철로 나오라고 일렀다. 저녁 8시에 부산역에 도착하여 포장집을 찾아갔다. 잔치국수와 닭발에 맥주를 시켰다. 면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아이들은 국수를 맛있게 먹는다. 부랴부랴 서울역에 와서 간단한 스낵으로 저녁을 때운 아이들이다. 배고프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국수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나를 데리러 오셨을 때 아빠 나이의 남편이 아빠처럼 맞은편에 앉아 있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편과 닭발에 맥주를 마시며 과장되게 아빠와 국수를 먹었던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에게도 엄마와 할아버지의 추억을 들려준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면 우리와도 음식 추억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자정이 넘은 시간에 먹었던 따뜻한 국수는 부녀지간에 따뜻한 온기를 남겨준다. 장소와 음식은 무엇을 추억하기 가장 좋은 소재이다. 국수로 시작한 아빠와의 추억은 징검다리 건너가듯 다른 음식으로 넘어간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빠와 단둘이 많은 것을 먹으러 다녔다. 다음에 갈 친정행이 기대된다. 아빠를 모시고 추억 음식을 먹으러 가야겠다. 벌써 생선탕의 얼큰한 냄새와 초밥의 달짝한 맛이 떠오른다. 다행히 아빠와 다니던 생선가(家)는 그대로 남아있다. 아마도 또다시 생선탕 대신에 초밥을 시키는 나를 보고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반찬으로 초밥도 나오는데, 너는 꼭 초밥을 시켜서 먹더라니까.’ 아빠는 생선탕을 드실 때마다 초밥을 시키는 나를 보고 매번 같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아빠 눈에는 배부른 생선탕보다 초밥을 깨작대는 내가 아쉬우셨나 보다. 아빠도 그때를 기억하시는지 꼭 생선가에 가서 초밥을 시켜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