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이 향하는 곳

서울 여행

by 방수미

서울을 걷는다. 아스팔트가 녹을 듯이 뜨겁고 머리는 달궈진다.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에 서울로 여행을 왔다. 한때 서울시민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관광객으로 온다.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다.


서울에는 바다와 논밭 빼고는 모든 것이 다 있다. 광장, 문화, 공연, 즐거움, 북적거림, 산과 강…. 어디를 가든 번화가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오래전에 보았던 드라마에서 시골에서 상경한 어떤 이가 택시를 타고 ‘시내에 가요’라고 말하자 택시 기사는 ‘여기가 다 시내요, 어디로 가요?’라고 반문했었다. 내가 살던 도시도 시내라고 하면 역전 근처였고, 그때의 중심지는 그곳 하나였다. 지금이야 여기저기 신시가지가 건설되면서 구미에 맞는 곳을 찾아간다. 그러나 지금도 시내라고 하면 쇠퇴해 버려 옛날 영광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역 앞을 의미한다. 이런 나에게 서울은 뷔페 음식과 같았고, 숨은그림찾기와도 같았다.


갑작스레 서울로 이사가 결정되었다. 남편이 일터를 서울로 결정한 것이다. 이게 웬 횡재냐 싶은 마음에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뿌리를 내릴 줄 알고 새롭게 고쳤던 그 집은 삼 년도 되기 전에 팔았다. 남편의 일터가 바뀌는 것이 이유였고, 그러다 보니 십 년의 서울살이 중에서 네 군데 동네에서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다. 부산으로의 이사도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남편이 부산에 일터를 구했고 한 일 년 있다가 올라오기로 했는데, 부산이 좋아서 오히려 가족이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다. 무슨 일이든 콩 볶듯이 후다닥 해치운다. 평생 서울에서 살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운 부산행으로 서울이 너무 아쉬워졌다. 그때야 서울을 돌아봤다. 내가 원하던 광장, 문화, 공연, 즐거움, 북적거림…. 등등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든 가까이에 있으니 다음으로 미루었다. ‘다음’이란 말처럼 불확실한 미래도 없다. 부랴부랴 서울을 다녔다. 서울 성곽길도 걷고, 북한산 둘레길도 완주하고, 당시 유명해지기 시작한 연남동에도 가보고 북촌 한옥마을도 가고 부암동을 거닐기도 했다. 아쉬움을 한가득 남기고 부산으로 왔다.


그 뒤로 서울여행은 언제나 목적이 뚜렷했다. 서울을 많이 걷자. 서울을 많이 보자, 서울을 많이 느끼자. 서울에 살던 친구들을 보기 위해 계절마다 서울을 찾았다. 그녀들과 서울을 걷고 보고 느꼈다. 일 년에 한 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온다. 다행히 아이들도 나만큼 서울여행을 좋아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들과 서울여행을 한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방학도 짧고 현장 체험학습도 쓰기 어려워 팔월의 한복판에 무더위가 하늘을 찌를 때 서울에 왔다. 2박 3일의 서울여행은 철저하게 아이들 여행으로 계획했다. 그 속에 살짝 내가 좋아하는 코스도 넣었다. 또 박물관이냐고 투덜대면서도 나보다 빠른 걸음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으로 이것저것 보는 아이들을 보면 기특하다.

첫날의 일정은 중앙박물관에서 시작했다. 아이들은 서울 살 때 중앙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어린이공연을 보던지 어린이박물관이 목적이었고, 보물로 가득한 중앙박물관 본관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침 한·영수교 기념으로 영국의 <내셔널갤러리>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서 이번에 꼭 들러야 한다. 짜임새 있고 소개가 잘 되어 있는 내셔널갤러리의 작품들을 보고, 본관으로 가서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반가사유상, 김홍도의 씨름도, 고려청자, 조선백자, 손기정의 투구, 청동기시대 농경문 등을 보고 그리스·로마 시대 대리석 작품들도 보았다. 반나절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아쉬움을 남기고 익선동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익선동은 내가 서울 올 때마다 한 번은 꼭 가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익선동에 관해서 설명하고 저녁을 먹고 좁은 골목을 산책했다. 낮은 한옥 처마와 좁은 골목과 멋진 실내장식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익선동은 올 때마다 변함없이 사람이 많다. 그것조차 반가운 구경거리다.

둘째 날은 아이들이 서울 살 때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던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사 년만의 만남이라 어색할 것을 염려하여 놀거리가 풍부한 홍대거리로 장소를 정했다. 처음 봤을 때는 말 한마디도 못 나누던 아이들이 보드게임, 방 탈출게임, 노래방, 오락실, 사진들을 찍으면서 십 년 전의 우정을 되찾아 재잘재잘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엄마들도 반가움에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다 같이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저녁 일정으로는 여의도한강공원에서 한강 라면을 먹기로 했다. 드라마에서 한강 편의점에서 라면 먹는 걸 본 후로 서울여행에 아이들이 꼭 넣어야 한다던 코스였다. 해 질 녘에 도착한 한강은 샤프란 색깔로 서쪽부터 곱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초록 잔디와 출렁이는 물결을 보며 한강 라면을 호호 불며 먹었다. 마치 서울 사람처럼, 라면 하나 먹으러 가볍게 한강에 나온 사람들처럼, 그렇게 한강 라면을 먹었다.

셋째 날의 일정은 대학로였다. 오전에는 친구가 예약해 준 유화 그리는 곳이었고, 오후는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보았다. 작년에 인기가 있었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뮤지컬이라 미리 책을 읽고 갔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주인공이 말도 하고 움직이고 노래도 불렀다.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팝업북을 넘기면 그 장의 주인공이 일어나 말하는 것처럼, 책과 뮤지컬의 이미지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부산행 기차 안에서 내년 서울 여행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서울에 남겨둔다.

이촌, 종로 3가, 홍대, 여의도한강공원, 대학로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서울에 살 때도 이곳은 있었으나 언제나 ‘나중’으로 미루던 곳이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떠난 후에야 아쉬움이 생긴다. 서울살이 십 년 동안 더 열심히 서울을 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지금은 서울이 너무 멀리 있다. 그래도 서울에는 친구가 가장 많이 살고 있으니 내 발끝은 서울로 향한다. 친구 순례하듯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간다.

서울 지도를 펼치고 가본 곳에 빨간 스티커를 붙인다. 가고 싶은 곳에 파란 스티커를 붙인다. 만나는 친구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파란 스티커가 빨간 스티커로 바뀌게 할 것이다. 가을에는 아이들 없이 나와 친구들의 여행이다. 단풍으로 물드는 궁이 기대되는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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