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석탑 앞에서

익산 미륵사지

by 방수미

익산 미륵사지 석탑 앞에 섰다. 천오백여 년의 때를 말끔하게 씻어버린 석탑은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하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석탑이라는 수식어답게 다른 절에서 보지 못한 양식이다. 학자들은 그것을 목탑양식으로 만든 석탑이라 설명한다. 아이들 교육을 앞세워서 해마다 오지만, 실은 내가 석탑이 보고 싶어서이다.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는 석탑은 모든 이를 반겨주는 귀부인이다.


익산에서 삼십 년을 살았고, 서울에서 십 년을 살았고, 지금은 부산에서 살고 있다. 아직은 고향에서 산 세월이 더 길지만, 곧 타향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익산을 떠난 이래 익산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도시가 좋다고, 서울이 좋다고 생각했다. 서울이 왜 좋냐고 묻는다면, 시골 쥐와 서울 쥐를 이야기하고 싶다. 복잡하고 정신없지만 바다 빼고는 모든 것이 있어서 좋았다. 서울은 무엇이든 풍부하다. 문화, 공연, 전시, 궁 그리고 종로와 한강도 좋다. 문만 열고 나가면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 모두 서울 안에서 가능하다. 부산에 내려오면서도 곧 서울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부산에는 마치 장기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부산에 살면서 한 발 떨어져 서울을 보니 어느새 시골 쥐가 되어 복잡한 서울에 다시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는 더 작은 도시인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소박한 익산이 나에게 다시 다가온 이유는 미륵사지 석탑 때문이다. 미륵산의 보호를 받으며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석탑이 좋다. 경주-전주와 비교하면 인구도 적고 관광객도 적은 익산이다. 어디든 한적하고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 사람에 쫓기지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강물처럼 떠밀려 앞으로만 가지 않으니 잠시 옆도 보고 뒤도 본다. 가만히 석탑을 바라보며 말을 건다. 돌이 무슨 말을 하랴. 석탑이 미소로 답하는 것은 내 기분이려니. 그렇게 바라만 봐도 좋다.

미륵사지 석탑은 최근에 해체-복원공사를 했다. 석탑에 균열이 생기고 일제강점기 때 발라놓은 시멘트가 보기도 흉하지만, 문제도 생겨서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석탑은 거대한 철제 가림막 안에 숨겨졌다. 공사 시작쯤에 대학박물관에서 조교로 근무하던 나는 학예사 선생님을 따라 가림막 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가림막 안은 석탑 꼭대기까지 볼 수 있도록 계단이 계속 연결되었다. 안내하던 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며 올라간 계단 꼭대기에서 석탑 옥개석을 보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던 석탑이 이제 내 눈 아래 있었다. 그때의 경이로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공사가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고, 나의 기다림은 이십 년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석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2019년에 바로 석탑을 찾았다. 시꺼먼 때를 벗은 석탑은 귀부인처럼 곱고 예뻤다. 잠시 낯설었지만 석탑은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듯하여 보기에 좋았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거대한 절이다. 가운데 엄청나게 큰 목탑을 두고 양쪽에 9층 또는 7층으로 추정되는 석탑을 두 개 세웠다. 그 오래전부터 황등은 좋은 돌로 유명했나보다. 여담이지만 청와대 영빈관의 거대한 기둥도 황등석이다. 질이 좋은 황등석과 뛰어난 백제의 기술로 우리나라 최초로 석탑이 익산에 세워졌다. 천오백여 년의 풍파에 동탑은 몇 개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문화재 복원에 관한 생각이 얕았던 시절에 동탑이 복원되었다. 꾀죄죄하고 어두운 서탑(西塔)과 화강암의 하얀 반짝임을 자랑하는 동탑(東塔)은 너무 이질적이어서 같이 보기에 불편했다. 서탑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사이 삼십 년의 세월에 동탑은 세월를 입고, 서탑은 때를 벗었다. 그들은 시간차를 두고 같이 서 있다. 키가 작아진 어머니와 아직 꼿꼿한 딸의 모습이다. 동탑은 문화재가 아니라서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찰주(擦柱, 목탑을 만들 때 가운데 세우던 기둥,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 양식이라 가운데 찰주가 있다)를 가운데 두고 사방의 문도 열려 있다. 서쪽을 바라보고 앉으면 동탑 문틀 사이로 서탑이 보인다. 마치 서탑이 액자 속에 담긴 듯하다. 미륵사지 석탑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명당자리이다.

석양의 햇살을 받고 곱게 서 있는 석탑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이십 년이 떠오른다. 과연 청·장년을 보내며 나는 무엇을 이루었을까.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이룬 것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증거처럼 내밀 것도 없다. 무형의 자산만 마음속에 쌓인다. 석양과 돌이 주는 이미지에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 얼굴』이 떠오른다. 마을의 바위산을 보고 자란 어니스트는 바위산의 얼굴을 한 성인을 기다린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사업가, 무자비한 장군, 오만한 정치가, 현실과 타협한 시인이 나타나 그는 실망한다. 결국은 어니스트에게 감명받은 시인이 어니스트야말로 바위산을 닮은 성인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여전히 언젠가 나타날 성인을 기다린다. 묵묵하게 주어진 일에 열심히 살면 된다고, 어니스트를 창조한 호손에게 진리를 배운다. 석양에 물든 미륵사지 석탑과 석양을 받으며 삶을 말하는 어니스트. 그들을 생각하며 조급함과 욕심을 내려놓는다.

언제부터인가 오월은 벌써 여름의 얼굴을 가졌다. 한동안 나를 기다려주던 아이들이 덥다고 성화다. 국립 익산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다고 사달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바로 옆의 기념품 가게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 모양의 마그넷이 보인다. 홀린 듯 다가가 마그넷을 산다. 마그넷을 만지작거리는 내 손끝에 즐거움이 배어있다. 한바탕 땀을 식혔으니 이제 박물관에서 석탑이 품고 있던 천년의 보물을 만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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