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부산 장산 모정원에서

by 방수미

가끔 오르던 (해운대구) 장산이다. 그러나 오늘의 발걸음은 특별하다. 현충일 행사 참석을 위해 모정원에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천공원에서 모정원까지 2km 길의 이름은 ‘애국지사 강근호길’이다. 청산리대첩의 중대장 강근호 지사가 잠시 잠들었던 곳. 그곳의 이름이 모정원이다.


‘애국지사 강근호길’을 걸으며 강근호 지사와 이정희 여사를 생각한다. 강근호 지사는 열여덟 살부터 반일운동에 나섰고, 신흥무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후에 청산리대첩에 참전하셨다. 또한 자유시 참변, 이르쿠츠크 감옥에서 홍범도 장군과 함께 고난을 겪으셨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6.25전쟁도 참전하셨다. 사람에게는 인연이란 것이 있는가 보다. 평생을 홀로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던 강근호 지사에게 평생을 함께 할 동지가 생겼다. 강근호 지사가 연대장으로 있던 부대에는 여군으로 참전 중인 이정희 여사가 있었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육 형제 중에서 가장 막내인 이시영 부통령의 증손녀가 이정희 여사이다. 신흥무관학교의 인연을 통해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강근호 지사는 전역 후에 부산 영도에서 사시다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이정희 여사는 국가재건운동을 하면서 장산 개척단을 꾸려 퇴역군인의 살길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때 강근호 지사의 유해를 잠시 장산 모정원에 모셨다. 지금 강근호 지사와 이정희 여사는 대전현충원에 나란히 잠들어 계신다. 이 두 분은 진짜 인연인 것이 이정희 여사께서 돌아가신 날이 청산리대첩 기념일인 10월 21일이다. 평생을 동지로 사셨던 두 분께 의미 있는 날이 10월 21일이다.

오늘은 제53사단 코끼리 여단에서 현충일 추념식을 준비한다. 그동안 유족과 애국 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삼일절, 현충일, 광복절, 청산리대첩 기념일에 모정원을 개방하며 관람객을 맞이하곤 했는데, 오늘은 군에서 준비한다니 기대가 크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재촉하여 산을 오른다. 벌써 찾아온 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걷자마자 덥고 다리 아프다고 성화다.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한다며 달래고 어르고 2km를 올라갔다. 장산의 한 귀퉁이에 탁 트인 곳에 있는 모정원은 시원한 바람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벌써 유족들과 기념사업회에서 준비한 차와 다과가 차려져 있고, 군인들과 군악대가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잠시 토방에 걸터앉아 땀을 닦으니 행사 시간이 되었다. 군에서 주최하는 행사는 처음 보는 거라 신기했다. 소개와 인사가 있을 때마다 군악대는 듣기 좋은 음악을 연주한다. 야외에서 멋진 소리를 듣다니. 마치 아침부터 서둘러 나온 것에 대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군인 한 명이 가곡 ‘선구자’를 부른다.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 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는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살면서 수십 번도 더 들은 노래지만, 오늘은 새롭다. 정말 어려운 길을 앞서서 나가며 한 평생을 조국을 위한 길을 걸은 강근호 지사에게 어울리는 노래이다. ‘선구자’는 독립운동하는 청년이 쓴 시에 조두남 작곡가가 만주 용정의 한 여관에서 곡을 붙였다고 한다. 고향에서 반일운동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강근호 지사는 용정으로 망명한 후 3.1운동에 참가하셨다. 강근호 지사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또 어느 시인이 이육사 시인의 ‘광야’를 낭송한다. 기품있고, 낭랑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광야. 지난 달에 안동에서 이육사 시인의 따님이신 이옥비 선생님을 만나 뵙고 온 터라 구절마다 가슴에 꼭 박힌다.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지도 벌써 78년이다. 언제나 생각한다. 독립지사들의 목숨을 내건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땠을까. ‘선구자’와 ‘백마 타고 온 초인’이 있어서 우리는 지금 자유를 누리며 풍요로운 세상에 산다.

오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라면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라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다. 나는 고등학교 국사 수업에서 일제강점기 부분이 너무 어려웠다. 구한말부터 해방될 때까지는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격변기였다. 만주, 간도도 헷갈렸고,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는 외워도 외워도 어려웠다. 독립운동가들의 비밀스럽고 빠른 움직임만큼이나 많은 단체가 생기고 없지고 사건들도 많았다. 시험에 나올만한 것만 열심히 외우고 나머지는 포기했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 바라본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고 대충 알아도 안되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글자로 외우느니 장소를 찾아간다. 생각보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배우기 좋은 곳들이 아주 많이 있다. 부산에만 해도 가까이에는 장산 모정원이 있고, 동래구에 가면 3.1운동이 벌여진 동래 시장과 박차정 의사(의열단 김원봉의 부인) 생가도 있다.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성녀 지사의 묘소는 부산 남구 용호동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부산에는 일본으로 징용, 징병 끌려가던 이들이 많았는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도 부산에 건립되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빠르게 변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독립운동가의 족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한 시간여의 현충일 추념행사가 끝나고 유족들이 준비한 차와 떡을 맛있게 먹었다. 큰 항아리에 연꽃이 활짝 피었다. 맑은 마음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한 강근호 지사에게 어울리는 연꽃차이다. 하늘도 아는지 오늘 날씨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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